동대문야구장 편집하기
누리위키, 온 누리의 백과사전
편집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저장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26번째 줄: | 26번째 줄: | ||
동대문야구장은 수익성이 낮은 아마추어 경기만을 전담하면서 서울시의 골칫덩이가 되었고, 자연스레 철거방안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한국 야구의 시작과 발전을 함께한 야구의 성지라는 점 때문에 야구인들이 동대문야구장 철거에 격렬하게 반대해왔다. 야구인들은 동대문야구장을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인 [[한신 고시엔 구장]]처럼 지속해서 보존하며 한국 야구의 추억과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철거가 많이 늦어지기는 했으나 철거를 완전히 막지는 못하였다. 2006년에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선거공약에 따라 2008년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었고 이 자리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었다. | 동대문야구장은 수익성이 낮은 아마추어 경기만을 전담하면서 서울시의 골칫덩이가 되었고, 자연스레 철거방안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한국 야구의 시작과 발전을 함께한 야구의 성지라는 점 때문에 야구인들이 동대문야구장 철거에 격렬하게 반대해왔다. 야구인들은 동대문야구장을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인 [[한신 고시엔 구장]]처럼 지속해서 보존하며 한국 야구의 추억과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철거가 많이 늦어지기는 했으나 철거를 완전히 막지는 못하였다. 2006년에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선거공약에 따라 2008년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었고 이 자리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었다. | ||
− | 동대문야구장 철거 직전에 열린 덕수고등학교와 충암고등학교간의 2007년 제2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은 지금까지도 많은 야구팬이 회자하는 경기로 손꼽힌다. 이 경기에서 충암고는 9회까지 1대 0으로 앞서고 있었는데, 충암고의 [[홍상삼]] 투수가 9회 2회까지 | + | 동대문야구장 철거 직전에 열린 덕수고등학교와 충암고등학교간의 2007년 제2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은 지금까지도 많은 야구팬이 회자하는 경기로 손꼽힌다. 이 경기에서 충암고는 9회까지 1대 0으로 앞서고 있었는데, 충암고의 [[홍상삼]] 투수가 9회 2회까지 잡아놓고는 그만 상대편 타자의 연속 안타로 동점을 허용해 버렸다. 이때 홍상삼 선수는 분함과 허탈함을 이기지 못하여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아서 야수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내뱉었는데, 이것이 전국으로 생중계되면서 선수 자질에 대한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은 동대문야구장의 철거를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 열린 경기여서 더욱 많은 야구팬의 기억 속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참고로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공식 경기는 이 경기가 아니라 2007년 10월 28일 열린 제41회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결승전이다. 이 경기에서는 [[경성대]]가 [[단국대]]를 3대 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
− | 야구장 철거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묻혀버린 서울성곽과 수문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면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옆에 복원 및 공원화하였다. 구 동대문야구장의 대체구장으로 [[고척 스카이돔]]이 2009년 착공되어 2015년 개장하였다. | + | 야구장 철거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묻혀버린 서울성곽과 수문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면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옆에 복원 및 공원화하였다. 구 동대문야구장의 대체구장으로 [[고척 스카이돔]]이 2009년 착공되어 2015년 개장하였다. |
== 같이 보기 == | == 같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