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해상 세월호 침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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えのきだたもつ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5월 11일 (수) 11:28 판 (잘못된 정보.)
사고 직후 구조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2024년 4월 27일 토요일
총 승객 476
생존 172
실종 9
사망 295

넌 나쁜 년.

세월호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에서 건조되어 18여년동안 가고시마오키나와를 오가던 배였는데, 길이 146미터, 폭 22m 규모의 여객선으로 정원 921명, 차량 150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를 재적할 수 있었다. [1] [[2012년 10월 1일 퇴역하고 중고선박 시장에 나왔던 것을 청해진해운2012년 10월 매입,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도 항로에 투입됐다. [2] 사고나기 전에 안전검사를 마치긴 했다고 한다.[3]

전광훈 목사다!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암초설

바닥면에서 패인 자국이 발견됐다는 점, [4] 바닥에서 긁히는 소리가 났다는 점 [5] 등이 근거로 뽑힌다. 그러나 반박 의견으로는 당시 해안 지역에서는 뚜렷한 암초가 없었다는 점, 세월호의 항로가 굉장히 안전했다는 점 등으로 아니라는 의견이 있다. [6] 또한 해양수산부는 사고 당시 파도가 센 것도 아니였다고 주장했다. [3] 이 설은 다른 설에 밀려서 주장되지 않고 있다.

내부폭발

생존자중 쾅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의견이 있어서 내부폭발 역시 설득력있는 원인이다. [7] 다만, 2월에 있었던 점기점검에서는 이상이 없었다는 반론이 있다. [3]

과속설

세월호 출항 당시 짙은 안개로 인해 출항이 지연돼 예정 출항시각보다 2시간 정도 늦게 출항했다. [1] 세월호 자체가 최대 속도 21노트로 운항했고, 위험지대로 유명한 맹골수도에서 평소보다 훨씬 빠른 19노트로 운항했다. 조타수들에 따르면 16노트로 운항하는 것이 정상이였다고 하여 과속의 책임은 피하기 힘들어졌다.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협수로의 속도를 제정하는 법률이 없기에 이에 대한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8]

이 설은 아래의 변침설과도 연관이 있다. 과속으로 인해 지정된 좌표로 항해를 하지 못했고, 이때문에 변침을 시도하다가 침몰을 했다는 설이다.

급격한 방향전환(변침설)

임긍수 목포해양대학교 교수는 안개때문에 선로의 방향을 바꾸다가 짐으로 인해 전복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9] 해경역시 급격히 뱃머리를 틀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10]

과적설

세월호의 주수입이 여객선 용도가 아닌 화물 운반이였으며 [11] 청해진해운이 상습적으로 과적을 했다는 1인 시위도 사건이 발생하고 뒤늦게 밝혀졌다. [12] 또한 화물을 실어야 하는 양인 987톤보다 3배나 무거운 3608톤을 세월호에 실었다는 것이 알려져 사실상 이쪽으로 무게가 기울어진 상황이다. [13]

하위문서

유사 해앙사고

사건명 발생일 유사점
남영호 침몰사고 1970년 12월 14일 급격한 회전으로 인한 침몰이라는 원인이 유사
도나 파즈호 침몰사고 1987년 12월 20일 세월호와 도나 파즈호 모두 일제 선박, 선원과 선장의 잘못된 대처로 사망자 수 증가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 1993년 10월 10일 사고지역이 둘다 전라도 지역,[14] 대한민국 영해에서 발생한 사고, 여행 과정에서 발생한 참사, 언론들의 오보 문제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좌초사고 2012년 1월 13일 이탈리아판 세월호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 선장이 승객들을 버리고 먼저 탈출하여 이탈리아 검찰이 징역 2697년형을 구형했다.

이 외에도 선장의 조기탈출 논란과 객실에 들어가있으라는 방송이 나왔으므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와 유사한 점이 있다.

같이보기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