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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에는 '''서울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9년에 외야 관중석 및 전광판을 설치하여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야구장으로 재개장하였다. 이후 1963년에 조명시설이 설치되면서 야간 경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전까지 고교야구, 실업야구 및 대학야구 등 아마추어 야구 경기를 개최하며 한국 야구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9년에 외야 관중석 및 전광판을 설치하여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야구장으로 재개장하였다. 이후 1963년에 조명시설이 설치되면서 야간 경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전까지 고교야구, 실업야구 및 대학야구 등 아마추어 야구 경기를 개최하며 한국 야구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1982년에 [[잠실야구장]]이 개장하면서 서울야구장은 '''동대문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2년 3월 27일,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로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경기가 이곳 동대문야구장에서 개최되었다. [[MBC 청룡]]은 1982년 시즌에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다음 해부터는 잠실야구장으로 홈구장을 바꾸었다. [[OB 베어스]]도 1985년 한 시즌에만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을 뿐 다음 해부터는 [[잠실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프로야구팀들이 떠나간 동대문야구장은 아마추어 경기 위주의 야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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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에 [[잠실야구장]]이 개장하면서 서울야구장은 '''동대문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2년 3월 27일,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로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경기가 이곳 동대문야구장에서 개최되었다. [[MBC 청룡]]은 1982년 시즌에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다음 해부터는 잠실야구장으로 홈구장을 바꾸었다. [[OB 베어스]]도 1985년 한 시즌에만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을 뿐 다음 해부터는 [[잠실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프로야구팀들이 떠나간 동대문야구장은 아마추어 경기 위주의 야구장으로 남았다.
  
 
=== 철거 ===
 
=== 철거 ===

2018년 4월 22일 (일) 23:26 판

동대문야구장
동대문야구장.jpg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흥인문로
개장 1925년
철거 2008년
표면 인조잔디
크기 좌우펜스 98m
중앙펜스 118m
펜스높이 2m
수용인원 26,874명

동대문야구장서울특별시 중구 광희동에 있었던 야구장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에 경성야구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하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도로 2008년에 철거한 후 야구장 부지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였다.

역사

조선시대에는 서울성곽의 수문이 있던 자리였다.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에 이곳에 경성야구장이라는 이름으로 야구장을 개장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서울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9년에 외야 관중석 및 전광판을 설치하여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야구장으로 재개장하였다. 이후 1963년에 조명시설이 설치되면서 야간 경기가 가능하게 되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전까지 고교야구, 실업야구 및 대학야구 등 아마추어 야구 경기를 개최하며 한국 야구의 중심지로 거듭났다.

1982년에 잠실야구장이 개장하면서 서울야구장은 동대문야구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82년 3월 27일, 전두환 대통령의 시구로 시작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경기가 이곳 동대문야구장에서 개최되었다. MBC 청룡은 1982년 시즌에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으나 다음 해부터는 잠실야구장으로 홈구장을 바꾸었다. OB 베어스도 1985년 한 시즌에만 동대문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였을 뿐 다음 해부터는 잠실야구장으로 홈구장을 옮겼다. 프로야구팀들이 떠나간 동대문야구장은 아마추어 경기 위주의 야구장으로 남았다.

철거

동대문야구장은 수익성이 낮은 아마추어 경기만을 전담하면서 서울시의 골칫덩이가 되었고, 자연스레 철거방안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한국 야구의 시작과 발전을 함께한 야구의 성지라는 점 때문에 야구인들이 동대문야구장 철거에 격렬하게 반대해왔다. 야구인들은 동대문야구장을 일본 고교야구의 성지인 한신 고시엔 구장처럼 지속해서 보존하며 한국 야구의 추억과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철거가 많이 늦어지기는 했으나 철거를 완전히 막지는 못하였다. 2006년에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선거공약에 따라 2008년 동대문야구장이 철거되었고 이 자리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조성되었다.

동대문야구장 철거 직전에 열린 덕수고등학교와 충암고등학교간의 2007년 제27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은 지금까지도 많은 야구팬이 회자하는 경기로 손꼽힌다. 이 경기에서 충암고는 9회까지 1대 0으로 앞서고 있었는데, 충암고의 홍상삼 투수가 9회 2회까지 잡아놓아서 우승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만 남겨둔 상태에서 그만 상대편 타자의 연속 안타로 동점을 허용해 버렸다. 이때 홍상삼 선수는 분함과 허탈함을 이기지 못하여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아서 야수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내뱉었는데, 이것이 전국으로 생중계되면서 선수 자질에 대한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은 동대문야구장의 철거를 목전에 앞둔 상황에서 열린 경기여서 더욱 많은 야구팬의 기억 속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참고로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마지막 공식 경기는 이 경기가 아니라 2007년 10월 28일 열린 제41회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 결승전이다. 이 경기에서는 경성대단국대를 3대 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야구장 철거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시절 묻혀버린 서울성곽과 수문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면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옆에 복원 및 공원화하였다. 구 동대문야구장의 대체구장으로 고척 스카이돔이 2009년 착공되어 2015년 개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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