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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파일:1930부산.png|300픽셀|섬네일|1930년대 부산의 지도.]] 2~4세기경, 지금의 부산 동래 지역에는 [[진한]]의 관할 지역인 '''거칠산국'''이 위치했다. 거칠산은 “거친 산”이란 의미로, 도시 중앙에 우뚝 솟아 있는 [[황령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신라]]에 흡수되면서 거칠산국은 '''거칠산군'''이 되었다.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에서는 250개 이상의 철기 무기와 [[주괴]]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들은 삼국시대 초기의 것으로 당시 부산지역에 강력한 지방 정권이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757년, 거칠산군은 동래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이는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지명이다. 15세기 초, [[조선]]에서는 부산을 [[일본]]과의 무역항으로 지정하고, 일본인들이 부산에 거주하도록 허용했다. [[울산]]과 [[진해]]에 있던 일본인 거주지의 경우에는 나중에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 [[왜관]]이라고 불렸던 부산의 일본인 거주지는 [[임진왜란]](1592) 때까지 지속되었다. 왜란이 끝나고, 1607년 일본과의 국교가 재개되면서 부산 왜관은 재건되었다. 부산의 일본인 거주지는 나중에 [[초량]](현재의 [[동구(부산)|동구]] 초량동)으로 위치를 옮겨 1876년 [[강화도 조약]]을 채결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우리나라가 외국과 처음으로 맺은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의 채결 결과 부산은 국제항으로 완전히 개항되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부산항은 물자와 인력을 일본에 수탈당하는 창구로 이용되었다. 부산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차]]가 도입된 도시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을 통틀어, 부산은 [[대구광역시|대구]]와 함께 [[북한]]에 점령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도시로서 난민 수용소 및 임시수도의 구실을 했다. 1950년 여름과 가을에 [[UN]]군은 이른바 부산 주위로 [[부산 방어선]]을 세우고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후 부산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도시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63년 부산은 [[경상남도]]에서 분리되어 '''부산직할시'''로 명명되었다. 1983년에는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했다. 1995년에 부산직할시가 부산광역시로 이름을 바꾸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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