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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파일:関東一帯を騒がした鮮人暴動の正体はこれ_放火殺人暴行掠奪につぎ橋梁破壊も企てた不逞団1.jpg|250픽셀|섬네일|[[관동대지진]] 당시의 신문기사. 「관동일대를 떠들썩하게 한 조선인 폭동의 정체는 이것 - 방화, 살인, 폭행, 약탈에 교량파괴도 계획한 불한당」]] [[파일:Chosen-gakko classroom.jpg|250픽셀|섬네일|[[조총련]]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조선학교. 김일성·김정일 초상화가 교실 앞쪽에 걸려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의 체결로 인해 모든 한국인들의 국적이 [[일본제국]]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 동안에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본토로 유학을 가거나 일거리를 찾으러 갔다. 1923년 [[간토 대지진]]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지자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고, 불을 지르고 있다’는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곳곳에서 자경단이 조직되어 한국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성난 민심의 눈을 돌리기 위해 이러한 만행을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하기까지 했다. 1940년대 들어 일본이 전쟁을 치르면서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자, 한국인을 징용하기에 이르렀다. 징용된 한국인은 석탄 광산이나 군수 물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대다수는 일본과 가깝고 경제적 기반이 빈약했던 [[경상도]] 또는 [[제주도]] 출신이었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한국이 해방된 시점에 일본에는 무려 200만 명에 이르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들 중 140만 명 정도는 한국으로 되돌아갔으나, 나머지 60만 명은 한국의 정세불안 등의 이유로 일본에 남는 편을 선택하였고, 이들이 일본 이민 1세대가 되었다. 한반도가 정치적 이유로 인해 남북으로 갈라지자, 재일동포들도 정치적으로 갈라서기 시작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원을 받는 재일동포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이 먼저 등장했으며, 이에 대항하여 [[대한민국]]의 지원을 받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이 설립되어 대립각을 세웠다. 초창기에는 민단보다 조총련에서 재일동포들을 위해 더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조총련을 지지하는 재일동포가 많았다. 초기의 재일동포는 일본의 교육과정을 따르기 보다는 한국어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학교’에 다니기를 원했다. 그러나 당시 조선학교는 조총련의 지원을 받아 설립된 것이었으며, 때문에 미군이 조선학교를 폐교시키려 하면서 재일동포와 마찰을 빚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은 뉴커머(new comer)라고 따로 불린다. 1988년 해외여행자유화 이후 그 수가 늘어났다. 대부분은 취업비자를 가지고 있으나, 불법체류하고 있는 경우도 있어 사회문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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