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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선과 사임 === 이승만은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초대 대통령에 한하여 연임 제한 조항을 없애버렸고, [[대한민국의 제3대 대통령선거]](1956년)에 출마하였다. 이승만은 여전히 전국적인 대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이승만 정권의 부패와 무리한 연임에 반발하는 국민의 수도 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빠르게 지지율을 확보해가던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선거유세 도중 돌연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이승만은 70%의 득표율로 무난하게 3선에 성공하였다. 이때 자유당은 이승만을 재출마하게 하려고 소와 말까지 동원하며 이승만 박사 재출마 청원 대회를 열었다. 이를 비꼬는 의미에서 우의마의라는 단어가 나타났다.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대한민국의 제4대 대통령선거]](1960년)에 출마하였다. 하지만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선거를 1달 앞두고 갑작스레 사망하면서 이승만은 유일한 대통령후보가 되어, 사실상 당선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선거와 함께 치러진 부통령선거에서는 [[이기붕]]의 당선이 어렵게 되자, [[자유당]] 측의 엄청난 규모의 부정선거(3·15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 이로 인하여 경남 마산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이 시위는 의문의 실종을 당했던 [[김주열]] 군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곧 이승만은 이 선거가 부정선거로 치러진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자기가 저지른 일은 아니었고, 자기 자신은 어차피 선거여부에 관련없이 당선 확정이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였다. 곧 책임자인 이기붕은 당선사퇴를 고려한다 했다가 사퇴하고 물러났다. 당시 부통령이던 [[장면]]도 바로 사퇴했다. 하지만 성난 시위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며, 이승만은 이 요구에 대해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한다'''라고 발언하며 꽤나 쿨하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4·19 혁명]]). 의외로 이승만이 물러나자 군중은 오히려 수고했다고 박수치며 환호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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