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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되기까지 == 1985년 한국으로 돌아온 김대중은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여당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1987년 전두환이 국민들의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고, 직접선거 형태로 열리게 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 김대중과 [[김영삼]]이 야당 측 대통령 후보로서 출마했다. 하지만 김대중과 김영삼이 끝내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지 못하면서 야당 표가 분열되어 어부지리로 전두환과 같은 군인 출신의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노태우는 단 36%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 될 수 있었으며 김영삼은 28%, 김대중은 27%의 득표율을 얻는 데 그쳤다. 김영삼은 1992년 치러진 [[제14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3당 합당을 통해 통합 [[민주자유당]](이후 [[한나라당]]이 됨)을 출범시켰다. 3당 합당을 통해 거대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김영삼은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가볍게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1997년 12월 18일 치러진 [[제15대 대통령선거]]은 김대중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었다. 선거 직전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국민들이 김영삼 정부와 여당에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김대중은 [[김종필]]과의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으며, 40.3%의 득표율로 김영삼이 밀어주던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되었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정권 교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회창의 득표율이 38.7%, 이인제의 득표율이 19.2%임을 감안해 볼 때 보수표가 이회창과 이인제로 갈리는 바람에 김대중이 어부지리로 당선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김대중은 [[전라도]] 지역 출신의 첫 대통령이라는 의의도 있다. 김대중에 앞서 대통령을 지냈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은 모두 [[경상도]] 출신이었고 이에 따라 경상도는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전라도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소외되어 있었으며 발전이 더디었다. 이 때문에 전라도민들은 전라도 출신의 김대중을 높은 지지율로 밀어주었다. 덕분에 [[광주광역시]]의 김대중 후보 득표율은 97.3%에 이르는 등, 김대중은 전라도에서 많은 득표를 확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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