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사용자
로그인하지 않음
토론
기여
계정 만들기
로그인
누리위키
검색
목포시
편집하기 (부분)
누리위키, 온 누리의 백과사전
이름공간
문서
토론
더 보기
더 보기
문서 행위
읽기
편집
역사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역사 == === 마한 및 삼국시대 === 목포는 본래 삼한 중 [[마한]]의 영토였으며, [[삼국시대]] 들어 [[백제]]의 영토가 되면서 물아혜(勿阿兮)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무안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참고로 백제의 물아혜, 통일신라의 무안군은 현재의 목포뿐만 아니라 현재의 무안, 신안 등을 함께 묶어 부르는 지명이었다. === 개항 === [[파일:목포근대역사관1.jpg|300픽셀|섬네일|구 일본영사관(현 목포근대역사관) 건물]] 1897년 10월 1일, 목포는 [[부산]], [[인천]]에 이어 세 번째로 개항을 하게 된다. 이는 인천항이 개항한 것보다는 15년 늦은 것이다. 일본에게 있어서 목포는 일본의 [[나가사키]]와 [[중국]] 본토를 잇는 항로의 중간에 위치한 상업적 요충지였다. 또한, 목포는 [[전라도]]의 곡창지대에서 수탈한 곡물을 가져가는 기능도 하였다. 개항 이후 일본인 정착민들을 위한 주거단지가 대거 조성되었으며, 이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마련되면서 목포는 국제도시로서 빠르게 발전하였다. 일본인들은 주로 목포항과 가까운 현재의 유달동 지역에 거주하였다. 1897년 개항과 함께 목포에 설치된 일본영사관은 1907년까지 목포에 있었다. 현재 구 일본영사관 건물은 [[목포근대역사관]] 1관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일본인 정착민들은 목포 인근의 농경지를 점점 사들였다. 일본인은 이 농경지를 헐값에 사들일 수 있었고 세금도 많이 낼 필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일본인이 사들인 농경지에서 수확된 곡물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일본으로 팔려갔고, 반대로 전라도 지역에서는 쌀이 귀해지면서 쌀값이 두 배로 폭등하였다. 1905년, 일본인 정착민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일본인 주거지가 금화동 지역까지로 넓혀졌다. 금화동에는 [[벚꽃나무]]가 뒷산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은 이 거리를 벚꽃마을이라는 뜻의 “사쿠라마치”(櫻町)라고 불렀다. 사쿠라마치에는 일본에 의해 조성된 성매매업소 구역인 유곽이 있었다. 1910년에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면서 무안부는 목포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목포에는 일제의 수탈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들어섰는데, 현재 이건물은 [[목포근대역사관]] 2관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요약:
누리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누리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둘러보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위키방
임의의 문서로
도움말
연습장
위키 도구
위키 도구
특수 문서 목록
문서 도구
문서 도구
사용자 문서 도구
더 보기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문서 정보
문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