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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경력 == === 국회의원 === 박근혜는 1998년 보궐선거를 통해 [[한나라당]] 소속 [[대구]] [[달성구]]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2000년 총선]], [[2004년 총선]], [[2008년 총선]]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연달아 당선되었다. [[2012년 총선]]에서는 새누리당의 전체적인 선거지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하여 지역구 국회의원이 아닌 [[새누리당]]의 11번째 비례대표의원으로 출마,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 선거의 여왕 ===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한 역풍과 때맞춰 폭로된 [[이회창]]의 뇌물 스캔들([[차떼기 사건]])로 인하여 한나라당은 [[2004년 총선]]에서 참패할 운명에 처해 있었다. 오죽하면 당 내부에서 한나라당을 없애고 재창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와중에 한나라당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는 그간의 논란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한나라당으로 거듭 태어나겠다는 의미에서 한강 둔치에 천막을 치고 한나라당 당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한나라당의 “천막당사”는 국민들에게 진정성 있는 개혁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결국 국회의석 121석을 지켜내면서 당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상당한 선방을 했다. 이 때부터 박근혜에게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하였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선거 유세를 다니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괴한의 커터칼 습격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박근혜의 얼굴에는 11cm 길이의 상처가 났으며, 병원으로 이송된 후 수 시간에 걸쳐 60바늘을 꿰맸다. 수술 이후 회복 중이던 박근혜가 자신의 수행원에게 던진 말은 바로 “[[대전]]은요?”였다. 당시 경합지역이었던 대전광역시장 선거 진행상황을 물어본 것이다. 이 일화는 널리 유명해졌으며, 갈등하던 대전시민의 마음이 한 쪽으로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다. 결국 대전광역시장 자리는 한나라당 소속의 박성효 후보 차지가 되었다.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호남]]과 [[제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광역자치단체장 자리를 싹쓸이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박근혜는 이 선거를 통해 선거의 여왕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였으며, 차기 대통령 후보로도 거론되기 시작했다. === 2007년 대통령선거 ===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나서려 했으나 [[이명박]]과의 경합 끝에 미세한 차이로 패배하여 대통령 후보는 되지 못하였다. 박근혜는 이명박 후보의 비리 연루 혐의를 거론하며 집중 공격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당내선거인단 선거에서는 이명박 후보에 앞섰지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여론조사 결과에서 밀리면서 패배하였다. === 2008년 총선 === [[2007년 대통령선거]] 결과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곧이어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친(親)이명박계 인물들을 대거 선거에 출마시켰다. 친 박근혜 계파는 이를 일종의 정치적 보복으로 받아들였으며, 결국 한나라당을 탈퇴하고 [[친박연대]]라는 새로운 당에 가입하였다. 이 상태에서 치러진 2008년 총선에서 친박연대는 14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하며 의외의 선전을 거두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근혜 본인은 한나라당에 끝까지 남았으며 오히려 탈당자들에게 한나라당 복귀를 권유하였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합당 거부와 친박연대 내 갈등으로 인하여 합당은 오랫동안 성사되지 못하였다. 결국 2012년에 와서야 한나라당에 흡수 통합되었다. === 2012년 총선 === 이명박의 임기 말에 이르러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땅에 떨어진 2012년,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장 자리에 올라 한나라당의 쇄신을 주도하였다.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개명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이명박 정권의 비리 스캔들에 휘말려 패배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152석의 국회의석을 확보하여 과반수 의석 확보에 성공하였다. 13일간의 선거기간동안 박근혜는 7200km에 이르는 긴 거리를 이동하였으며 100군데가 넘는 선거구를 방문하였다. 박근혜의 이러한 행보는 새누리당의 승리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며 박근혜의 리더쉽이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2012년 총선에서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의 재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 2012년 대통령선거 === {{본문|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선거}} 박근혜는 이명박 당선 직후부터 이미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어왔으며,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었다. 박근혜의 지지율은 2008년 총선 당시 가장 높았으며, [[세종시]]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던 2010년 초에 가장 낮게 나타났다. 2011년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이자 [[안랩]]의 창업자인 [[안철수]]가 대통령 후보로 급부상하였다. 이 당시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와 박근혜의 지지율은 엇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박근혜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상승하였다. 2012년 8월 30일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는 차기 대통령으로서 45.5%의 지지율을 확보하며 다른 대선주자들을 압도하였다. 같은 해 9월 11일의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는 50.6%, 안철수는 43.9%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2012년 7월 10일, 박근혜는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공식적으로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하였다. 박근혜는 이 자리에서 국민의 행복 추구권, 경제 민주화, 맞춤형 복지 등을 주장하였다. 민주당에서는 [[문재인]]이 9월 17일에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으며, 안철수는 9월 19일에 대통령 출마를 선언하였다. 결국 2012년 12월 19일에 치러진 [[제18대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는 51.6%의 득표율을 얻으면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2017년 파면 === * 2017년 3월 10일, 탄핵 인용 선고로 [[파면]] 된 박근혜는 노동당으로 부터 건조물침입,업무방해,군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형사고발당했다. 현재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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