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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860-70년대에 [[함경도]] 지역에서 심한 가뭄으로 인해 흉년이 들자 국경지대에 살던 조선인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서 인구가 적고 땅이 비옥한 [[간도]]지역에 정착한 것이 오늘날 재중동포의 시초이다. 이는 청나라와 조선 사이의 국경 분쟁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던 것이 1885년, 청나라가 북간도 지역 일부를 조선인 개간구역으로 지정, 조선인들의 정착을 허용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조선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1885년부터 1910년 [[한일병합]] 이전까지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은 26만 명으로 추정된다. 1910년 [[한일병합]] 이후에는 일제의 토지 개혁으로 인하여 농사 지을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비어있는 땅을 찾아서 간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1910년부터 1928년까지 48만 명에 이르는 조선인이 이주하였을 정도로 조선인 이주민의 수가 급증하였다. 국경을 넘은 조선인들 중에는 농민뿐만 아니라, 일제의 탄압을 피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망명 독립투사들도 많았다. 1920년 6월에는 [[대한독립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한 [[봉오동 전투]]가 간도 지역에서 전개되기도 하였다. 1931년 일제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간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부 지역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우고 대륙 침략의 전진기지로 사용하고자 하였다. 일제는 ‘만주개척운동’이라는 이름하에 정책적으로 한국인을 만주국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이 정책에 따라 재중동포의 수는 1945년에 216만 명까지 급증하였다. 일제의 극심한 식량수탈에 신음하고 있던 조선의 농민들은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간도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일본군과 독립군이 충돌하는 만주국의 사회상은 혼란하기 짝이 없었으며 여기에 민족 간 갈등까지 겹치면서 간도 내 조선인들의 삶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1938년 창설된 한국인 무장독립단체인 [[조선의용대]]는 중국 공산당과 협력하여 항일전투를 전개하였으며, [[중일전쟁]]에도 함께 참여하였다. 조선의용대는 해방 이후 북한의 [[조선인민군]]의 모태가 되었다. 1945년에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216만 명 중 절반 정도(100만 여명)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하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중국에 그대로 머무는 것을 선택하였다. 중국은 중국에 남은 한국인들을 중국 내 소수민족으로 규정하고, ‘조선족’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해방 이후 벌어진 [[국공내전]](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서 중국에 남아 있던 조선의용대는 국민당을 배격하고, 토지개혁을 지지하는 공산당을 도와서 전쟁에 적극 참여하였다. 재중동포는 새로운 중국 건설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서, 중국 공민으로서 상당한 대우를 받는 소수민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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