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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 자연하천이었던 청계천은 [[조선]]이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사람의 손길이 닿게되었다. 당시의 청계천은 [[봄]]과 [[가을]]에는 말라있는 건천이었던 것에 반해 [[여름]]철에는 조금만 [[비]]가 와도 넘쳐 흘러 인근의 민가에 피해를 입히기 일쑤였고, 이에 [[태종]] 6년(1406년)부터 7년(1407년)까지 하천의 바닥을 쳐내고 넓힌 후 둑을 쌓고, 태종 11년(1411년) [[12월 14일]]에 개천도감(開川都監, 개거도감(開渠都監)이라고도 함)을 설치하여 이듬해 [[1월 15일]]부터 한 달동안 큰 공사를 실시하여 이를 방지하고자 하였다. 이때 이루어졌던 공사를 개천, 즉 '내를 파내다'라는 의미로 불렀는데 이것이 그대로 청계천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기 전까지 사용되었다. 그러나 공사 이후에도 흙이 쌓여 계속해서 [[홍수]] 피해가 나는 등 문제가 발생하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는 사람과 가축의 주검이 쌓여 묻히는 등의 일이 있자 [[영조]] 36년(1760년) 2월에 21여만명을 동원하여 바닥을 파고 영조 49년(1773년)에는 양안을 전부 석축으로 개축하는 준천 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준천사라는 기구를 두어 공사 이후에도 준처할 수 있도록 하고 준천사실과 준천소좌목을 지어 이 준천 공사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영조 이후 [[순조]]와 [[현종]], [[고종]]때에도 준설 공사가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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