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사용자
로그인하지 않음
토론
기여
계정 만들기
로그인
누리위키
검색
프랑스
편집하기 (부분)
누리위키, 온 누리의 백과사전
이름공간
문서
토론
더 보기
더 보기
문서 행위
읽기
편집
역사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
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스팸 방지 검사입니다. 이것을 입력하지
마세요
!
== 역사 == [[파일:바스티유습격.jpg|300픽셀|섬네일|시민군이 정치범 수용소인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모습. 이는 [[프랑스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파일:나폴레옹.jpg|300픽셀|섬네일|[[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이후 정권을 잡고 유럽의 여러 국가를 침략했다.]] “프랑스”라는 이름은 “[[프랑크 족]]의 땅”이라는 뜻의 [[라틴어]] “프란시아”(Francia)에서 온 것이다. 현대 프랑스의 영토는 고대 [[갈리아 족]]의 영토와 거의 유사하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마 제국]]의 [[율리우스 시저]]는 갈리아 족을 정복했는데, 갈리아 족은 로마의 문물을 받아들여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인 [[프랑스어]]를 만들어냈고, 로마의 국교인 [[기독교]]도 차츰 받아들였다. 기원후 4세기 경, [[독일]] 지역에 살던 부족민인 [[프랑크 족]]이 갈리아 족을 침략했다. “프랑스”라는 이름이 나온 것도 이 때부터였다. 프랑크 족은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기독교로 국교를 변경한 첫 부족이기도 하다. 843년, [[베르됭 조약]]이 체결되면서 프랑크 제국은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 중 가장 면적이 넓은 서프랑크왕국은 현대 프랑스의 초석이 되었다. [[카롤링거]] [[왕조]]는 987년까지 서프랑크를 통치했으며, 그 뒤를 이어 [[위그 카페]](Hugh Capet)가 왕위에 오르면서 [[카페 왕조]]가 세워졌다. 이후 프랑스 왕국은 숱한 전쟁과 왕조 교체를 거쳐 강대국의 입지를 다졌다. 17세기, [[루이 14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왕권이 가장 막강하게 되어 스스로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루이 14세가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의 절대군주로서 왕의 말이 곧 법인 시대를 만들었으며, 왕의 권력은 신이 주신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하여 귀족들과 함께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루이 14세의 방탕한 생활은 나중에 [[프랑스 대혁명]]의 발생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유럽의 최강대국이 된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프랑스어]]는 국제 [[외교]]관계에서 통용되는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계몽주의]] 운동도 대부분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18세기경 여러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을 이뤘다.<ref>이 시기에 활동하던 대표적인 프랑스 과학자로는 [[라부아지에]]가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라부아지에이다.</ref> 또한 이 시기 프랑스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해외 침략을 일삼아 거대한 식민지 제국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질 때까지 [[군주제]]를 유지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 1793년 국왕 [[루이 16세]]와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사실 루이 16세의 경우 이전의 국왕인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에 비하면 검소한 생활을 했고, 나름 프랑스의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해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국민들, 특히 [[부르주아]]로 통칭되는 제 3신분들의 대두,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 등 당시 프랑스의 사회문제가 워낙 심각했던 터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막지 못하고 결국 처형된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이 아닌가?”라는 무개념 발언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러한 발언을 한 바 없으며, 이는 당시 민중들을 선동시키기 위해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불과 몇 년 뒤인 1799년에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공화국을 통치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스스로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유럽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나폴레옹의 지배는 끝나고, 프랑스는 다시 왕정 국가로 되돌아갔다. 프랑스는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거대한 [[식민지]] [[제국]]을 건설하였다. 프랑스 제국은 서아프리카와 남동아프리카 지역을 포함한다. 지금까지도 옛날 프랑스 식민지였던 지역에서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프랑스는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모두에 참가한 나라이기도 하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군은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그러던 1944년 6월 6일, 연합군에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 노르망디 지역을 탈환한 것을 발판으로 8월 25일 [[파리(프랑스)|파리]]를 탈환하였다.
요약:
누리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누리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
둘러보기
둘러보기
대문
최근 바뀜
위키방
임의의 문서로
도움말
연습장
위키 도구
위키 도구
특수 문서 목록
문서 도구
문서 도구
사용자 문서 도구
더 보기
여기를 가리키는 문서
가리키는 글의 최근 바뀜
문서 정보
문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