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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옥 및 사형 === [[파일:위국헌신군인본분.jpg|섬네일|150픽셀|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안중근이 투옥된 [[뤼순 감옥]]의 일본인 간수들은 안중근의 성품과 대의명분에 감탄하여 그를 존경하였다. 안중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일본인 간수 지바 도시치(千葉十七)는 안중근 같은 사람이 죄인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것에 대해 괴로워했는데, 안중근은 그에게 군인으로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거꾸로 위로해 주었다. 안중근은 사형 집행일 당일에 지바 도시치에게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라는 글귀를 적어서 선물해 주었는데, 지바 도시치는 이것을 평생 소중하게 간직하였다. 이 글귀는 현재 후손이 한국에 반환하여 [[안중근 기념관]]에 보관되고 있다. 1910년 2월 14일, 안중근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안중근의 어머니는 아들의 사형 소식을 전해듣고 그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 편지에는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를 받은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하고, 사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신에 안중근은 감옥에서 집필하고 있던 책 <[[동양평화론]]>의 완성을 위해, 히라이시 고등법원장을 만나서 자신의 사형일을 미뤄 달라고 요청하였다. 히라이시 고등법원장 역시 안중근의 인품에 그를 존경하고 있던 터라, 그의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후 도쿄에서 안중근을 즉시 사형할 것을 명하면서 히라이시는 그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게 되었다. 결국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의 집필을 끝마치지 못한채, 1910년 3월 26일에 [[뤼순 감옥]]에서 사형되었다. 안중근의 유해는 뤼순 감옥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까지 유해가 묻힌 장소는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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