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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 부정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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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이후 == 너무나도 명백한 부정선거였던 터라, 선거일 이튿날인 [[3월 16일]]부터 [[경남]] [[마산]]<ref>당시에는 영남 지역에 (이승만을 싫어하는) 진보세력이 더 많았다.</ref>(현재의 [[창원시]]) 지역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는데, 이를 [[마산 3·15 의거]]라 한다. 시위가 진행 중이던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혀있는 [[김주열]] 군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이로서 경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사망자를 낸 것이 밝혀지자,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4월 18일에는 [[고려대학교]]에서 3,000여 명의 고려대생이 연좌시위를 하고 귀가하던 길에 정치폭력배가 나타나 학생들을 구타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날 서울 시내 각 대학교에서는 총궐기를 일으켰는데, 이를 [[4·19 혁명]]이라 한다. 총궐기 1주일 만인, 4월 26일 이승만은 시민대표 5인과 면담을 실시, 이 자리에서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하고, 3 ·15부정선거는 다시 한다. 또한, 이기붕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는 동시에 내각책임제 개헌을 한다.'''고 발언하면서 시위대의 요구사항을 전면 수용하였다. 그런데 하야를 결심하기 전 이승만이 한 말은 다소 묘했다-'''불의를 보고도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이승만은 부정선거 사실을 잘 몰랐거나 나중에 알았더라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즉 이기붕과 자유당에서 독단적으로 일으킨 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결국 이승만은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여 바깥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이승만이 시위대의 요구사항을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며 전면 수용한 것이나, 하야 전 마지막 한 발언 등을 살펴볼 때 이승만은 끝까지 자신을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 여겼던 듯하다. 결국 자유당은 해산되고, 부정선거 혐의로 부통령 당선이 취소된 [[이기붕]]은 4월 28일 자살하였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민주당의 후손들은 이후 선거 결과가 시원찮다 싶을 때마다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부정선거다!'''라며 선거에 승리한 상대방을 괴롭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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