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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리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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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파 == [[File:ZXSpectrum48k.jpg|thumb|아타리 쇼크와 동시대에 [[유럽]]에서 유행했던 [[ZX 스펙트럼]]]] 유럽에서는 아타리 쇼크의 영향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개인용 취미 컴퓨터 마케팅이 성공하여 ZX 스펙트럼이나 VIC-1001 등이 성공을 거뒀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또한 1983년 유럽의 게임 시장은 이미 게임기에서 개인용 컴퓨터로 옮겨갔다는 점도 아타리 쇼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원인으로 뽑힌다. [[아타리 2600]]의 몰락 이후 이 시기에는 잠시동안 유럽이 게임을 재패했던 적이 있다. 북미 게임계가 개인용 컴퓨터와 [[패밀리 컴퓨터]] 등으로 회생이 이뤄진 1980년대 후반에는 북미 게임시장의 성공을 발판으로 유럽으로도 진출하니 아타리 쇼크에 대해서 직접적인 영향은 없었어도 간접적 영향은 받았다고 볼 수 있다. [[File:Famicom-Console-Set.jpg|thumb|아타리 쇼크와 동시대에 [[일본]]에서 유행했던 [[패밀리 컴퓨터]]]] 일본 역시 아타리 쇼크의 영향이 거의 없었다. 당시 일본 게임계는 [[아타리 2600]]을 비롯한 콘솔들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타리 쇼크 이후 북미에 개인용 취미 PC 붐이 일어났을때 MSX가 등장하여 북미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였기에 역시 간접적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북미에서 아타리 쇼크가 일어나고 있던 당시에 일본에서는 [[패밀리 컴퓨터]]가 히트를 치고 있었으나, [[이마나시 히로시]]도 아타리 쇼크가 일어나지 않을까 내심 걱정했다고 말했다. <ref>[http://www.nintendo.co.jp/n10/interview/mario25th/vol2/index3.html]</ref> 아타리 쇼크는 1986년 등장한 [[닌텐도]]의 까다로운 라이선스 제도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아타리 쇼크를 경험하지 않은 일본에서 헤비 PC는 대중적이지 않았지만 PC 게임은 [[롤플레잉 게임]], [[시뮬레이션 게임]],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 장르를 중심으로 다수의 작품이 태어나 소프트웨어가 게임기에 이식되면서 콘솔의 가치가 증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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