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택문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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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택문제에 대하여
== 해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주택]]을 국가에서 ㅁ무상으로 공급해 주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주택]]을 국가에서 ㅁ무상으로 공급해 주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45년]] [[8월]]부터 토지개혁령을 내려 일제에게 협력한 간부 지주에게 무상으로 뺏고 민족자본가와 양심적 애국자들에게는 땅을 그냥 남겨 두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45년]] [[8월]]부터 토지개혁령을 내려 일제에게 협력한 간부 지주에게 무상으로 뺏고 민족자본가와 양심적 애국자들에게는 땅을 그냥 남겨 두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53년에 [[전후복구건설 3개년 계획]]을 실시화여 주택건설사업에 몰입하였고, 이 때, 평양시의 쓰딸린광장(지금은 [[김일성광장]]으로 이름을 고침)에 5층짜리 다층살림집건설이 집중적으로 이루어 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53년에 [[전후복구건설 3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주택건설사업에 몰입하였고, 이 때, 평양시의 쓰딸린광장(지금은 [[김일성광장]]으로 이름을 고침)에 5층짜리 다층살림집건설이 집중적으로 이루어 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 후, [[천리마거리]]와 [[창광거리]]를 대규모 주택단지로 만들고, 보통강변의 [[락원거리]]와 [[붉은거리]], 그리고 봉화거리를 건설해 주택산업에 몰입해 왔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 후, [[천리마거리]]와 [[창광거리]]를 대규모 주택단지로 만들고, 보통강변의 [[락원거리]]와 [[붉은거리]], 그리고 봉화거리를 건설해 주택산업에 몰입해 왔다.

2025년 11월 20일 (목) 23:57 기준 최신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주택을 국가에서 ㅁ무상으로 공급해 주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45년 8월부터 토지개혁령을 내려 일제에게 협력한 간부 지주에게 무상으로 뺏고 민족자본가와 양심적 애국자들에게는 땅을 그냥 남겨 두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53년에 전후복구건설 3개년 계획을 실시하여 주택건설사업에 몰입하였고, 이 때, 평양시의 쓰딸린광장(지금은 김일성광장으로 이름을 고침)에 5층짜리 다층살림집건설이 집중적으로 이루어 졌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그 후, 천리마거리창광거리를 대규모 주택단지로 만들고, 보통강변의 락원거리붉은거리, 그리고 봉화거리를 건설해 주택산업에 몰입해 왔다.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평양에서 개최되자, 만경대지구의 12층에서 15층 사이의 고층 아파트를 건설하였다.

세계청년학생축전(1989년 7월 1일에 개막, 1989년 7월 9일에 폐막)에는 개성시와, 남포시 그리고 함흥시에 주택건설이 집중적으로 투자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최근 주택건설의 집중을 미래과학자거리위성과학자주택지구, 그리고 은하과학자거리에 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