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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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의 노태우.

노태우(盧泰愚, 1932년 12월 4일~ 2021년 10월 26일)는 대한민국 대구 출신의 육군 장교이자 정치인이다. 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으로,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재임하였다.

생애

노태우는 전두환대구공업고등학교 동문이다. 육군사관학교 시절 럭비부 주장을 맡는 등 럭비에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1955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노태우는 꾸준히 진급하며 1979년, 전두환과 함께 12·12사태를 주도하여 전두환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을 도왔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을 맡아 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을 도왔다. 대통령이 된 전두환은 자신이 정권을 잡도록 도와준 노태우를 밀어주었다. 노태우는 전두환의 최측근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노태우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최 준비를 감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7년 6월, 전두환은 노태우를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차기 대통령으로 지목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분노하여 직선제 개헌 등을 주장하며,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민주시위를 벌였는데 이를 6월 민주항쟁이라 부른다.

6월 민주항쟁의 결과 민주헌법이 제정되었으며, 1987년 대통령선거는 직선제로 치러지게 되었다. 1987년 대통령선거에는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후보 등이 출마했는데 민주 인사인 김영삼과 김대중 두 후보가 단일화에 끝내 합의하지 않으면서 표가 분열되는 양상을 보이며 어부지리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당선 당시 노태우의 득표율은 36%에 지나지 않았으나, 당시 각각 28%, 27%의 득표율을 기록한 김영삼, 김대중 후보를 누르고 당선자가 되었다.

노태우는 재임 기간 동안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북방외교(중국, 소련, 북한 등 공산국가와의 외교) 기틀 마련 등의 업적을 이뤄냈다. 노태우는 자신이 말한 것처럼 민주주의 개혁에도 꽤나 힘썼다. 코라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을 만나 필리핀과 한국 양국 간의 경제, 사회 및 문화적 교류를 증진시키려 노력했다.

1993년 노태우에 이어 대통령에 당선된 김영삼은 반부패 캠페인을 실시하며 노태우와 전두환을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하였다. 역설적이게도, 김영삼은 민주정의당과 합당을 하는 등 노태우의 힘을 빌려 대통령 자리에 올랐었다. 결과적으로 1996년, 전두환과 노태우는 반역, 반란,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되었으며, 전두환은 무기징역이, 노태우는 22년 형이 선고되었다가 1997년 17년 형으로 확정 선고되었다. 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영삼 대통령 임기 중이던 1997년 12월 특별 사면되어 풀려났다.

사망

2021년 10월 26일 향년 90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같이 보기

ROKPresi.png 대한민국 대통령 ROKPresi.png
이승만 · 윤보선 · 박정희 · 최규하 ·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박근혜 · 문재인 · 윤석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