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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한자: 한일관계)는 대한민국일본 양국 사이의 외교적,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 관계를 의미한다. 양국은 가까운 이웃나라로서 민주주의자유주의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역사적으로도 많은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한국인은 일제강점기 당시 나라를 빼앗긴 수모를 겪은 이후 일본에 대한 경계, 즉 반일감정이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양국이 친선 관계를 맺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실, 시대에 따라서 한일관계는 우호와 갈등관계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한국인의 반일감정 만큼은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결국 가해자측인 일본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한국에 내밀어야만 양국간의 관계 개선이 가능한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의 열쇠를 쥔 일본 정부는 한일관계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있어 한일관계 개선은 앞으로도 어려워 보인다.

일제강점기 이전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일관계는 특별히 나쁠 것 없었다. 물론 시대에 따라 갈등관계에 놓이기도 하고 우호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았을때 현재의 반일감정이나 혐한과 같은 극단적인 반감을 가진 적은 거의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삼국시대

인류학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 균, 쇠>에서 "한일 양국은 유년기를 함께 지낸 쌍둥이 형제와 같다"고 주장하였다. 한국인과 일본인은 인종적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이며 언어적, 문화적 유사성을 갖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고대 역사를 많은 부분 공유한다. 한국의 삼국시대라고 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만 떠올리나, 사실 여기에 (일본)이 함께 하는 4국시대(가야까지 합친다면 5국시대)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는 지적이 있다. 오늘날의 인식과 달리 고구려-백제-신라가 한민족이라는 인식은 옅었고, 오히려 백제와 왜의 유대관계는 매우 굳건하게 유지되었다. 백제는 일본에게 불교를 전파하였으며, 특히 백제의 왕인 박사는 천자문 책을 들고 가서 일본인들에게 글을 가르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일본은 백제가 마한을 정벌하는데 군사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백제가 일본의 왕에게 하사한 칠지도는 당시의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4-5세기에는 백제와 일본이 연합하여 신라를 연속적으로 침공하였다(신라-왜 전쟁).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지원하면서 신라는 멸망을 겨우 면하였으나,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백제의 멸망 직후 일본은 백제의 부활을 위해 많은 군사를 보내어 신라와 백강전투(663)를 치렀다. 그러나 백강전투는 신라의 승리로 끝나고,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룩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내부에서는 신라가 일본을 마저 정벌하러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고, 반대로 일본이 신라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나당연합을 배신한 당나라가 신라와 일본의 공통 위협으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항하는 두 나라의 관계는 강화되었다. 따라서 신라와 일본의 교류가 증가하였으며, 특히 일본은 신라로부터 율령제를 도입하여 국가를 체계적, 중앙집권적으로 정비하였다.

삼국시대에는 일본이 한반도 국가들과 정치적으로 깊게 관여하며 행동하였던 것과 달리, 통일신라시대 이후로 일본은 한반도와 사신 파견 등의 문물 교류는 이어가되, 정치적으로는 선을 그으며 불간섭 정책을 펼쳤다. 즉, 신라의 통일을 기점으로 '한국의 역사'와 '일본의 역사'가 명확하게 분리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고려시대

1259년 여몽전쟁에서 패배하고 원나라의 사실상 속국으로 떨어진 고려는 원나라의 주도로 여몽연합군을 구성,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정벌(1274, 1281)에 나섰다. 이 전쟁은 세계대제국 건설을 꿈꾸고 있던 원나라의 요구로 이루어졌으며, 고려는 얻을 게 없는 전쟁에 억지로 끌려나간 입장이었다. 역사상 최초로 일본에 정규군이 침략한 이 전쟁은 두 차례 모두 태풍으로 인해 여몽연합군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비교적 허무하게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거꾸로 생각하자면 한국이 일본을 침공한 것은 이 때가 유일한 것이므로, 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역사시기 대부분 동안 매우 평화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조선시대 들어서, 조선과 일본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