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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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

중국 삼국시대 중 가장 사기 캐릭터다운 모습을 보인 삼국지의 진정한 천재 주인공이자 영원한 1인자

소개[편집]

조조는 삼국지정사에서 가장 주인공에 근접한 행보를 보인 인물이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를 만든 나본(羅本)에 의해서 조조는 당시의 중국 송나라명나라의 국가상황 때문에 오히려 주인공이 아닌 최종 보스로 전락한 비운의 인물이다. 당시 송나라는 거의 원나라의 속국인 상태였고 이를 극복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그 당시의 상황과 가장 비슷한 시대인 삼국시대를 통해 자신들의 민족성을 고취시키려 했다. 때문에 원나라에 대응되는 조조는 본의 아니게 악역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의 모습은 거의 몽골 제국의 추존된 천황(실제 천황의 직위에 오른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 의해서 천황으로 승격된 사례)이었던 칭기즈 칸과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조조는 중국 역사 전체에서 가장 개혁적이고 가장 뛰어난 통치능력으로 보여준 명군 중의 명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그 잘난 유씨 가문이 아니라는 이유, 이렇게 두 가지만으로 최종 보스가 되었으며 심하게는 동탁(董卓)과 대등한 입장에 몰리기까지 했었다. 천하의 인간쓰레기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 잘난 유씨 가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정받았던 유비(劉備), 유언(劉焉), 유표(劉表)와는 거의 대척점에 해당되는 인물이 조조이다.

어린 시절[편집]

조조는 환관 조등(曹騰)의 의붓아들인 조숭(曹嵩)의 아들로 조등에게는 의붓손자에 해당된다. 그런데 조등은 그냥 환관이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큰 환관이었다. 그 후한을 쥐락펴락했다던 십상시(十常侍)들조차도 조조를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십상시들의 대장이 조등이었기 때문이었다. 조등은 도저히 즉위할 가망이 없는 당시 천황이었던 유지(劉志)조차 몸소 즉위시킬 정도로 파워가 막강한데다가 청류파와 탁류파 모두에게 인정받았을 정도의 인격자였다. 또한 당시 십상시들은 조등에게 알아서 기었기 때문에 조등이 살아있던 후한은 나라가 그래도 유지되는 듯 했었다. 이 정도로 특정 분야의 최고봉 가문인 조조였지만 당대 환관이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사족들에게는 항상 찬밥 취급을 당했다.

한나라의 승상이 되다[편집]

이후 서량 지방의 군벌인 동탁이 당시 천황이었던 유변()과 천황의 어머니인 하태후()를 죽여버리고 하태후에 의해 독살당한 왕영(王榮)의 아들인 유협()을 강제로 천황의 자리에 앉혔다. 그 과정에서 손견()이 원술() 소속의 반동탁연합군에 들어가 화웅()의 목을 베고 여포를 쓰러뜨려서 동탁에게 엄청난 공포를 선사했다. 이에 동탁이 자기 부하를 시켜서 손견을 달래려 했으나 거절당했는데 이 때문에 동탁은 낙양에 불을 지르고 천황과 천후와 황족들을 포함한 낙양의 모든 백성들을 강제로 이끌고 장안으로 도주하게 된다. 이에 조조는 원소() 소속의 반동탁연합군에 속해있었지만 원소의 무능함에 한탄한 뒤 자기 혼자서 천황 폐하를 구하고 동탁을 추격하려 했지만, 말도 안 되게 적은 병력으로 추격하기 때문에 주변 영주들이 말렸다. 하지만 조조는 그래도 추격해서 어떻게든 천황 폐하를 구하려고 했지만, 동탁의 부하인 서영()에게 완전히 털렸다. 하지만 이것이 이미 조조가 저지른 신의 한 수였다. 조조는 천황 폐하를 동탁으로부터 구출하려고 갔다가 무참히 박살나버렸다는 소문이 퍼져버렸고 그 때문에 조조는 천황 폐하를 위하는 진정한 충신이라는 이미지가 쌓였고 덤으로 조조의 인기는 급상승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각()과 곽사()마저 죽은 이후로 조조는 완전히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조조는 십상시 시절이나 동탁 시절을 반면교사 삼아서 천황을 위해서 항상 예의를 갖추며 천황에게 최선책을 조언해 주었다. 그러는 한편 조조는 전란에 괴로워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이들을 위한 구휼책을 실시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라도 백성들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여 백성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관도대전[편집]

원소와 전쟁을 시작했다. 승리했다.

적벽대전[편집]

손권과 전쟁을 시작했다. 패배했다.

위나라의 천왕이 되다[편집]

이후 적벽에서의 패배로 천하통일의 기회를 놓친 뒤, 권력에 더더욱 집착하게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천황과 비슷한 특전을 누리는 구석을 받으려 하거나, 한황(漢皇) 유협으로부터 위왕(魏王)이 되려고 하는 등 권력을 마구 휘두르기까지 했다. 이것은 자신의 아들인 조비가 천황이 되게끔 멍석을 깔아준 것일 수도 있는데, 이 때문에 조조가 충신이라는 옹호론은 더욱 힘을 잃는다.

죽음[편집]

한편 조조는 낙양에 도착하였는데 이때 손권이 자신에게 밀서를 보내 관우를 기습하여 형주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조조는 손권의 요청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형주로 남하하였는데 도착하기 전에 서황이 미리 관우를 격파하였고 번성의 포위가 풀리게 되었다. 이렇게 손권과 연합하여 관우를 무찌른 조조는 다시 낙양으로 북상하였지만, 조조는 갑자기 병을 얻게 되었다.

능력[편집]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조조는 뭐든지 다 잘하니까! 머리도 뛰어난 놈이 싸움까지 잘하는데다가 목공이나 시조, 그림 같은 예체능에도 발군이었다. 그냥 존재 자체가 이미 특출난 능력을 가진 자가 조조다. 괴물도 이런 괴물이 없었다.

두뇌 면에서의 평가[편집]

사실 조조는 처음에는 공부하기 무지하게 싫어했으며 맨날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싸돌아다니며 밤늦도록 놀았다. 그 때문에 아버지인 조숭에게 호되게 혼났는데 이것이 자기 숙부인 조길이 자기 아버지에게 자기가 한 행동을 싸그리 고자질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조조는 어느 날 공부를 하던 도중 자신이 마비증상이 있는 척하며 숙부가 놀라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했는데, 이에 조숭이 다가오자 갑자기 멀쩡한 모습을 보이며

"원래부터 마비증상은 없었습니다. 아마도 숙부가 저를 믿지 못해서 아버지께 고자질을 하는 것입니다."

라고 역관광 태워버렸고 이에 조숭은 조길의 말을 전혀 믿지 않게 됐다. 이 정도로 조조는 매우 영민했다.

이후 조조는 나이가 들면서 학문의 필요성을 깨닫고는 하루 종일 죽어라 공부를 했다. 그 결과 조조는 학식을 쌓는 데 성공하였고, 조조는 위나라의 천왕이기 이전에 위나라 최고의 문장가 반열에 그 이름을 올린 게 조조이다. 게다가 통치능력 역시 엄청나게 탁월하고 자기 의붓할아버지인 조등을 쏙 빼닮은 중재능력도 갖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을 이끄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일례로 마초 토벌령을 내린 건 조조가 아니라 유협이였고 조조는 오히려 그런 유협에게

"천황 폐하, 마초의 아버지인 마등만 잡아놓고 계신다면 마초가 알아서 항복할 겁니다."

라는 말 한마디로 마초 토벌령은 커녕 오히려 마등에게 관내후의 관직을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유협은 조조의 의견을 듣고 보니 아주 좋은 보험이었다. 그래서 유협은 조조에게 이 계책을 실행하게 했고, 천황 폐하의 명을 받은 마등은 즉시 천황이 거주하는 황궁에 도착했다. 유협은 마등에게 관내후라는 관직을 내렸고 절대로 마등을 낙양의 황궁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이건 완전히 실패했다. 왜냐하면 마초가 천하의 개쌍놈이었기 때문이였다. 마초는 아버지인 마등이 관내후로 들어가자 오히려 한수에게 "저희 아버지가 죽게 되면 공이 저의 아버지 역할을 하시오."라 말하고 또다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결국 유협은 보험사고가 났고 유협이 몸소 마등을 참수했다.[1] 비록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탁월한 선택이였다. 마초가 상상을 초월하는 후레자식만 아니였더라면 무조건 성공하는 작전이였을 것이다.

무술 면에서의 평가[편집]

조조는 병력을 모아서 복귀하게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병력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곤란해졌을 때 혼자 반란을 일으킨 병력들을 몰살시켰다. 게다가 조조는 궁술 솜씨도 베테랑이라서 조조가 사냥을 나갔을 때 조조가 직접 활로 쏴서 죽인 꿩의 숫자가 65마리나 될 정도였다. 게다가 위나라 장수들 중 무예가 뛰어나기로 소문난 조창이 다름 아닌 조조의 넷째 아들이다. 하지만 조조는 손견의 죽음을 직접 들었고 손견이 왜 죽었는지 파악했기 때문에 일선에 지휘관으로 나서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군재의 경우도 역시 탁월한데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고 여러 병법을 익혀서 맹덕신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한 관도대전에서는 물량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원소를 상대로 탁월한 전략과 전술, 부하 참모들의 의견조율 등의 능력을 발휘해서 결국 승리를 쟁취하고 강북 일대를 모조리 평정했다. 자기보다도 더 뛰어났던 그 원소를 상대로 말이다. 다만 적벽대전에서는 수상전의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손권에게 완벽히 패배하는 모욕을 겪기도 했다. 참고로 초창기에 동탁에 의해서 강제로 장안으로 끌려간 천황 폐하를 구하려고 동탁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으나 되려 동탁의 부하인 서영에게 털린 건 거의 언플이라고 보면 된다.

인격[편집]

놀기 좋아하지만 자기계발에 게으르지 않았고 그 결과 모든 면에서 잘하는 만능영웅이 되었다. 또한 효심이 지나치게 깊어서 아버지인 조숭이 도겸의 노략질에 의해 희생당하자 서주에 도겸을 내놓으라고 길길이 날뛰기까지 했다. 서주 주민들이 거절하자 조조는 "이 씨발 새끼들을 계속 죽이다 보면 그 중 누군가는 도겸이겠지."라 외치며 학살을 자행했다. 결국 도겸이 나올 때까지 학살을 한 것이다. 이에 뼛속까지 질려버린 도겸은 서주를 유비에게 떠넘기고 야반도주를 하고 만다. 세월호 선장인 이준석과 도겸은 행태가 완벽하게 똑같을 뿐이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조조를 보면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조조는 많이 냉혹하고 많이 잔인했다. 그리고 조조의 이 악랄함으로 스타덤에 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유비였다.

처세[편집]

일단 조조는 제국에 대해서 항상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덤으로 자신의 부모에게도 효도를 아끼지 않았다. 그 뿐인가, 조조는 자기 부하를 매우 사랑하였는데 일례로 자신의 첫째 아들인 조앙과 자신의 호위장인 전위가 같이 전장에서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조앙의 죽음보다 전위의 죽음을 더 슬퍼했다. 비록 자기 아내에게는 엄청난 타박을 듣기는 했지만, 그 대신 조조는 부하들의 신뢰를 얻는데 성공했다.

거기다 위나라 천왕이 된 이후에는 스스로가 낙장불입인 현실을 재빠르게 인식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물러날 수가 없었다. 물러나는 순간 이미 조씨 가문은 멸족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길평, 왕자복, 오자란 같은 인간들이 틈만 나면 조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는데 물러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조조가 물러남으로 인해서 조씨 가문은 중국 전토에 발을 디딜 수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자기가 천왕의 자리를 유지하는 값으로 유협에게 항상 천황 폐하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고 늘 유협에게 최선책을 조언해줬다. 때문에 조조가 살아있는 동안에 유협은 그나마 십상시 시절이나 동탁 시절과는 달리 비교적 안정되게 나라를 다스렸다.

하지만 이런 천하의 완벽주의자 조조에게도 약점은 있었으니 그게 여자를 지나치게 밝힌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자기 부하인 장수의 뒷통수를 맞아서 첫째 아들 조앙과 호위장 전위를 잃어야 했고 여포를 토벌한 이후 여포의 부하였던 진의록의 처 두씨에게 홀딱 반해서 비록 최고의 장수라고 보긴 힘들지만 나름대로 능력은 있었던 관우를 잃고 말았다. 사실 관우는 두씨를 미치도록 좋아했었다. 하지만 그 두씨를 조조가 가로채는 바람에 관우는 개빡쳐서 조조를 떠났다. 역사 왜곡의 달인답게 뭔가 갖다 붙이기를 좋아하는 삼국지연의의 저자인 나본은 이걸 관우가 유비를 잊지 못해 조조의 곁을 떠났다고 갖다 붙였다.

  1. ^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몸소 마등을 참수한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