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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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해는 1994년으로, 1993년 대한민국의 문화체육부에서 국악의 대중화와 생활화를 목표로 지정하였다. '국악의 생활화를 통한 민족정서 회복',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통한 민족자존 확립', '미래문화 창조를 향한 기반 조성'이라는 3대 목표 아래 추진되었으며 가야금 명인 황병기가 조직위원장을 맡았다.[1]
배경[편집]
1991년 연극영화의 해, 1992년 춤의 해, 1993년 책의 해에 이어서 지정된 문화예술 분야 해로, 서양 음악의 홍수 속에서 점차 소외되어 가던 국악의 진정한 가치를 재조명하고, 전통 예술의 원형 보존과 재창조를 도모하고자 하였다.
1994년 1월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국악의 해 선포식이 열렸으며, 김영삼 대통령을 비롯해 4,000여 명의 관계자와 시민이 참석하여 성대하게 치러졌다. 선포식에 이어 열린 국악대축제에서는 국립국악원,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대학 국악과 학생 등 500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합동 공연이 펼쳐졌다.
주요 사업 및 행사[편집]
- 1인 1기, 1인 1창
- 우리 멋 우리 가락
- 국악 상설 무대 활성화
- 방일영국악상 제정
평가와 한계[편집]
당해 음반 시장에서 국악 관련 음반이 150여 종 이상 쏟아져 나오는 등 대중의 단기적인 관심을 환기시켰으며, 제1회 전국 국악관현악단 축제가 열리는 등 국악계 내부의 행사 규모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악의 생활화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초중고교의 장기적인 국악 교육 제도 개선이나 근본적 제도 장치 마련에는 미흡하였고, 대중매체의 편성 외면과 기업체들의 후원 부족 등으로 당초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