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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개토왕'''은 [[고구려]]의 제 19대 왕이다.
| + | 광개토왕은 [[고구려]]의 제 19대 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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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개요 ==
| + | 그는 [[391년]]에 고국천왕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죽자 곧바로 왕위에 올랐다. 광개토왕은 군사력을 키워 [[백제]]의 [[진사왕]]과 [[아신왕]]의 군대를 격파하여 그들을 굴욕시켰으며, 이 덕에 삼국의 격전지로 삼았던 한강 유역의 땅을 얻었다. 또 [[일본]]의 왜구들에게 시달림을 당했던 [[신라]]의 요청으로 이들도 몰살시켜 버렸다. 정복군주로 강하던 그의 노력으로 고구려는 당시 최고의 번영을 누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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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개토왕은 [[374년]]에 고구려의 제 18대 임금인 [[고국양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391년]]에 아버지인 [[고국양왕]]이 죽자 18세의 나이에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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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개토왕은 군사력을 키워 [[백제]]의 [[진사왕]]과 [[아신왕]]의 군대를 이겨 [[한강]] 유역의 땅을 차지하였으며, 동시에 왕의 친할아버지인 [[고국천왕]]의 원한을 풀어주었다. 또 왜구들에게 괴롭힘을 시달리던 [[신라]]의 요청을 받고 왜구들을 침입하는 것을 막아주고, 동시에 신라의 [[실성]] 왕자를 볼모로 잡아가는 쾌거를 안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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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고구려의 정복군주로서 이른바 "고구려의 황금기"를 이룩하였으며, 그 시기가 [[장수왕]]과 [[문자명왕]]까지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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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412년]]에 붕어하자, 아들인 [[장수왕]]이 지금의 [[중국]] [[집안 시]]에 있는 곳에 [[광개토왕비]]를 세웠는데, 아직까지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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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비석은 [[중국]] [[남북조시대]] 때 유행하던 [[예서체]]로 새겨져 있었는데, 이 글씨는 부식되고 마모된 곳이 있어서 [[일본|일본 제국]]이 식민지시절에 왜곡한 흔적도 고스란히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비문과 비석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지금 [[중국]]과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역사가들의 연구로 통하여 삼국사의 비밀이 새롭게 밝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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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고구려]] | | [[분류:고구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