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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한일관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양호하게 유지되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후반기에 접어든 2012년을 계기로 크게 악화되었다. 민주화 이후 한일관계는 2012년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2012년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한일관계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과 마찬가지로 양호하게 유지되었으나,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후반기에 접어든 2012년을 계기로 크게 악화되었다. 민주화 이후 한일관계는 2012년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2012년은 한일관계에 있어서 큰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 출생이기도 하고, 이명박 정부는 친일 정권이라는 비판이 있었을 만큼 정권 초기부터 일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임기 4년차인 2012년 들어 친인척 비리가 드러나고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이 가해지며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이 가속화 되었는데, 불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방책으로 반일(反日) 정책을 급히 꺼내들었다. 일단 대통령이 일본에 강경한 발언을 하면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덮어놓고 지지해주자는 여론이 나오므로 역대 정권에서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반일 발언을 회심의 카드로 사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급한 나머지 큰 무리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하였으며, 이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8월 14일에는 일본 [[천황]]을 향해 역사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였다. 두 행동 모두 역대 그 어떤 대한민국 대통령도 하지 않았던 돌발적인 행동으로, 한일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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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 출생이기도 하고, 이명박 정부는 친일 정권이라는 비판이 있었을 만큼 정권 초기부터 일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임기 들어 친인척 비리가 드러나면서 [[레임덕]]이 가속화 되었는데,
 
 
대통령의 독도 방문 소식은 외신을 통해 보도되며 [[독도]]가 세계적인 영토분쟁지역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일본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의 계기가 되었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 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분쟁 지역화 되는 것은 한국의 국익에 어긋난다. 즉,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적인 이익(지지율 확보) 때문에 국익을 훼손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8월 14일, 한일관계를 기어코 끝장내버린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천황 사과 요구' 발언이 터지고 만다.
 
 
 
{{인용문|일왕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면 우선 지난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저질렀던 악행과 만행에 대해서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 일왕이 독립투사들 앞에서 고개를 숙여서 사죄를 한다면 일왕 방한(訪韓)도 가능했을 것이다|이명박 전 대통령|2012년 8월 14일}}
 
 
 
이 발언은 일본인 입장에서 크게 3가지의 빡침 포인트가 있다. 첫째, 일본 천황은 한국에 방문할 그 어떤 계획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마치 천황이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것처럼 '''한국을 방문하고 싶으면''' 사과하라며 기만했다. 둘째, 천황은 일본에서 상징적 의미가 크므로 함부로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는데, 총리나 다른 정치인이 아닌 천황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러한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언행이었다. 셋째, 법적으로 천황은 정치 권력을 가지지 않으므로, 그 어떤 정치적 발언도 할 수 없다. 즉, 천황은 한일 역사문제에 대하여 사과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천황에게 정치적 발언을 요구한 것은 천황의 권력을 인정해버리는 무식한 발언이다. 추가로, 당시 천황인 아키히토 천황은 한국에 매우 우호적인 인물로서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드러내는 발언을 종종 해왔는데, 이러한 노력들을 모두 무시하는 발언이기도 했다.
 
 
 
이 발언은 한국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로 10년 넘게 이어진 한국와 일본 사이의 화해 분위기는 하룻밤 꿈으로 허무하게 끝났고, 한류는 싸늘하게 식었다. 일본 정치계에서 우익 세력이 힘을 얻었으며,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혐한]] 감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1999년부터 2012년 이전까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하는 비율이 비호감 비율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으나, 2012년을 기점으로 비호감이라 응답하는 비율이 호감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 이후로 한국의 [[반일감정]]과 일본의 [[혐한감정]]은 서로가 서로의 양분으로 삼으며 공고하게 유지되었다. 2012년 이후로 한일관계는 [[2015년 위안부 합의]], 2018년 [[한일 무역 분쟁]]과 그로 인한 [[노 재팬 운동]] 등의 사건에 따라 격랑을 겪었으나 반일과 혐한의 악순환이라는 큰 기조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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