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시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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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llang|ko-Hani|晉州市}})는 인구 30만명 내외의 중소도시로서, 서부 [[경상남도]] 일대의 <del>골목대장</del>중심도시이다. [[임진왜란]] 당시 쳐들어온 왜군들을 [[진주성]]에서 막아낸 역사가 있는데, 이를 [[진주대첩]](1592년)이라 한다. 당시 진주목사였던 [[김시민]]의 통솔력과 진주성의 지형적 특성([[남강]]이 진주성 주위로 흐름)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그러나 다음해인 1593년엔 왜군과의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그러나 끝내 비옥한 곡창지대인 [[호남]]지역까지는 왜군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말하자면 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육지는 진주성이 막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진주대첩을 [[한산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으로 부르기도 한다. | '''진주시'''({{llang|ko-Hani|晉州市}})는 인구 30만명 내외의 중소도시로서, 서부 [[경상남도]] 일대의 <del>골목대장</del>중심도시이다. [[임진왜란]] 당시 쳐들어온 왜군들을 [[진주성]]에서 막아낸 역사가 있는데, 이를 [[진주대첩]](1592년)이라 한다. 당시 진주목사였던 [[김시민]]의 통솔력과 진주성의 지형적 특성([[남강]]이 진주성 주위로 흐름)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그러나 다음해인 1593년엔 왜군과의 전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진주성이 함락되었다. 그러나 끝내 비옥한 곡창지대인 [[호남]]지역까지는 왜군이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 말하자면 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육지는 진주성이 막고 있었던 셈이다. 그래서 진주대첩을 [[한산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으로 부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