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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빈 장씨'''는 [[조선 숙종]]의 3번째 왕비이자 후궁이다.
| + | 희빈 장씨는 [[조선]] 제 19대 왕인 [[숙종]]의 후궁이다. 그의 아버지는 [[장헌]]이라는 통역관이며, 남인출신이다. 어머니는 양반 [[조사석]]의 노비이다. 처음에는 궁녀로 들어와서 숙종을 보필하게 되었는데, 얼굴이 너무 아름다워 숙종의 눈에 반했다. 그후 숙종을 보필하게 되는 궁녀가 되다가 아들을 낳게 되자, 후궁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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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설명 == | + | == 인현왕후 민씨와의 대립과 말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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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빈 장씨의 이름은 옥정으로, 역관 [[장현]]의 장녀이다. 당시에 당파싸움이 심했는데, [[남인]]과 [[북인]]과의 대립이 특히 심각했다.
| + | [[인현왕후]]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그후 인현왕후가 쫓겨나자 왕비가 되는데, 성격이 거칠고 탐욕스러워서 숙종이 싫어하게 된다. 후에 인현왕후 민씨가 다시 복권하자 오빠 장희재과 함께 사약을 받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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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종은 당시 어머니가 [[명성왕후 김씨]]인데, 그녀는 북인이었다. 그래서 북인을 싫어했던 숙종이 장씨를 데려다가 궁녀로 지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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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성왕후는 남인에 속해있던 희빈 장씨를 특히 싫어했는데, 그래서 북인의 세력에 놓여있었던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를 맞아드리게 된다. 그러나 [[인현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므로 [[숙종]]이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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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날, 명성왕후가 병으로 죽자, 숙종이 다시 장씨를 맞이하게 된다. 장씨가 아들을 낳게 되자 숙종은 장씨의 아들을 1살도 채 안 되어 세자로 책봉하게 된다. 세자를 낳은 덕택에 장씨는 후궁에서 벗어나, 왕비로 책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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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씨는 인현왕후가 복권되자 후궁으로 다시 된다. 그 이유는 《[[인현왕후전]]》에 의하면 장씨가 너무 성격이 거칠고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성격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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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에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는 사약을 받고 죽게 되는데, 그의 아들인 세자는 나중에 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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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가의 주장으로 볼 때 《인현왕후전》에서 나오는 희빈 장씨에 대해 평가가 너무 왜곡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사사된 장씨의 아들이 왕이 되었다면 이는 장씨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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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라서, 희빈 장씨의 그릇된 평가와 그녀와 관련된 부정적인 인식은 요즘에 와서 다시 고치게 되는 작업을 다시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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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조선의 인물]] | | [[분류:조선의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