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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들 중 유일하게 인천 [[남동구]]에 위치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남동구 중심과는 멀리 떨어진 북서쪽 구석진 곳에 있어 남동구 주민들도 이 역이 남동구에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역이 미추홀구와 남동구의 경계에 걸쳐 있어 역 주변 주민들조차 이 역이 미추홀구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역들 중 유일하게 인천 [[남동구]]에 위치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남동구 중심과는 멀리 떨어진 북서쪽 구석진 곳에 있어 남동구 주민들도 이 역이 남동구에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 역이 미추홀구와 남동구의 경계에 걸쳐 있어 역 주변 주민들조차 이 역이 미추홀구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간석역이라는 명칭은 역이 위치한 주소인 '''간석동(間石洞)'''에서 유래하였다. 간석동은 이 곳에 있던 마을인 '''간촌'''과 '''석촌'''에서 한 글자씩 이름을 따와서 지어진 것이다. 간혹 [[갯벌]]을 의미하는 '''간석지(干潟地)'''에서 유래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한자가 달라 사실 무근이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간석 인근에는 실제로 갯벌과 주안 염전이 있었으므로 이런 식의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안 염전은 1970년대에 매립이 이루어져 현재로서는 이 곳이 바닷가 인근이었다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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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석역이라는 명칭은 역이 위치한 주소인 '''간석동(間石洞)'''에서 유래하였다. 간석동은 이 곳에 있던 마을인 '''간촌'''과 '''석촌'''에서 한 글자씩 이름을 따와서 지어진 것이다. 간혹 [[갯벌]]을 의미하는 '''간석지(干潟地)'''에서 유래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으나, 한자가 달라 사실 무근이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간석 인근에는 실제로 갯벌과 주안 염전이 있었으므로 이런 식의 오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재는 매립이 이루어져 이 곳이 바닷가 인근이었다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
  
 
간석역은 1899년에 [[경인선]]이 개통한 뒤 100년 가까이 지난 1994년에야 중간 정차역으로 뒤늦게 개통했다. 따라서 역사가 비교적 긴 [[주안역]]이나 [[동암역]] 등의 주변 역과는 달리 급행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연계 교통이 부실한 편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역 인근 주민들만이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간석역은 1899년에 [[경인선]]이 개통한 뒤 100년 가까이 지난 1994년에야 중간 정차역으로 뒤늦게 개통했다. 따라서 역사가 비교적 긴 [[주안역]]이나 [[동암역]] 등의 주변 역과는 달리 급행열차가 정차하지 않고, 연계 교통이 부실한 편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역 인근 주민들만이 제한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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