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제13대 대통령선거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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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후보의 [[대구]] 유세 | *김대중 후보의 [[대구]] 유세 | ||
− | 김영삼을 지지하는 대구시민들이 ‘김영삼’을 외치며 폭력시위를 벌여 | + | 김영삼을 지지하는 대구시민들이 ‘김영삼’을 외치며 폭력시위를 벌여 소란사태가 벌어졌으나, 이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대동단결’, ‘질서유지’를 외치며 분위기가 안정, 김대중은 연설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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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text-align:center;" colspan="2"| [[제주도]] | ! style="text-align:center;" colspan="2"| [[제주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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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 | + | [[파일:13대선지역별득표율.jpg|800픽셀|center|섬네일|각 후보들의 지역별 득표수 비율]] |
− | [[호남]] | + | 특정후보에 대한 몰표현상이 가장 두드러진 지역은 [[호남]]지역이었다. 김대중 후보는 호남지역에서 90% 내외에 이르는 독재자급 득표율을 기록하였다(광주 94%, 전남 90%, 전북 84%). 또한, 당시에는 기반산업이 발전하지 못한 호남주민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이동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이 때문에 서울에서는 김대중 후보의 득표율이 유난히 높게 나타났다. |
− | + | 호남과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노태우와 김영삼 후보가 1·2위를 다투며 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태우 후보는 대구에서 득표율 71%의 몰표를 기록하였고, 김영삼 후보는 부산에서 득표율 55%, 경남에서 득표율 51%를 기록하며 선전하였다. 김종필 후보는 자신의 고향인 충남에서 45%에 달하는 득표율을 기록하였을 뿐, 이외의 지역에서는 득표율이 밑바닥을 맴돌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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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 이후 == | == 선거 이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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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이 선거를 부정 및 불법 선거로 규정하며, 투쟁의 뜻을 밝혔다. 김대중은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졌다면 자신이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김대중은 이 선거를 부정 및 불법 선거로 규정하며, 투쟁의 뜻을 밝혔다. 김대중은 선거가 공정하게 치러졌다면 자신이 당선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 ||
− | 김대중의 '통수'(대통령 불출마 번복) | + | 김대중의 '통수'(대통령 불출마 번복)은 민주투사 동료였던 김영삼과 김대중의 관계를 영원히 끊어놓게 된다. 만약 이때 김대중이 김영삼의 통수를 치지 않았다면 부산-경남-호남 지역이 함께 진보진영의 텃밭으로 묶이며 영-호남 지역갈등은 희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못했고, 이후 3당합당 과정을 거쳐 부산-경남 지역은 대구-경북 지역과 함께 보수진영의 텃밭으로 묶이게 된다. |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