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선거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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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의 3파전으로 전개되었다. 삼당합당으로 여당 프리미엄과 영남+충청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김영삼]]은 확실히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김영삼은 안정 속의 개혁, 강력한 정부와 대통령, 한국병 해소 등을 앞세우며 '''신한국'''을 비전으로, '''신한국 창조'''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반면 김대중은 호남 지역의 정치적 고립이라는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김대중은 김영삼을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한편, 대화합의 정치, 지역 차별 해소 등을 약속하였다. 여당과 야당의 교체를 의미하는 '''이번에는 바꿉시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한편, 정주영은 현대그룹의 신화를 재현하겠다면서 사업가 출신인 자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경제와 통일을 책임질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핵심 공약으로는 주택문제를 겨냥한 '''반값아파트'''를 제시하였고, 이 공약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정주영의 슬로건은 '''경제대통령 통일대통령'''이다. 정주영은 [[경남]] [[울산]]을 연고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주영의 돌풍은 영남지역의 보수표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재벌인 정주영을 밀어줄 리는 만무했기 때문에, 정주영은 진보표는 건드리지 않고 보수표만 흡수했다. 이에 따라 김영삼도 더 이상 대통령선거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선거는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의 3파전으로 전개되었다. 삼당합당으로 여당 프리미엄과 영남+충청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김영삼]]은 확실히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김영삼은 안정 속의 개혁, 강력한 정부와 대통령, 한국병 해소 등을 앞세우며 '''신한국'''을 비전으로, '''신한국 창조'''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반면 김대중은 호남 지역의 정치적 고립이라는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김대중은 김영삼을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한편, 대화합의 정치, 지역 차별 해소 등을 약속하였다. 여당과 야당의 교체를 의미하는 '''이번에는 바꿉시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한편, 정주영은 현대그룹의 신화를 재현하겠다면서 사업가 출신인 자신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경제와 통일을 책임질 적임자라고 주장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핵심 공약으로는 주택문제를 겨냥한 '''반값아파트'''를 제시하였고, 이 공약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정주영의 슬로건은 '''경제대통령 통일대통령'''이다. 정주영은 [[경남]] [[울산]]을 연고지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주영의 돌풍은 영남지역의 보수표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재벌인 정주영을 밀어줄 리는 만무했기 때문에, 정주영은 진보표는 건드리지 않고 보수표만 흡수했다. 이에 따라 김영삼도 더 이상 대통령선거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선거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이 [[부산]]의 어느 복요리 식당에서 발생한다. 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1992년 12월 11일, ‘초원복집’에는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과 부산직할시장, 부산지방경찰청장, 부산직할시 교육감 등의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을 의논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지역감정을 부추길 필요가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하였다. 이들의 발언은 정주영 후보 측에서 몰래 설치한 녹음기에 의해 모두 기록되고 있었고, 정주영 후보측에서는 선거판을 막판에 뒤흔들어보려는 속셈으로 이 녹취록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하지만 불똥은 다른 곳으로 튀었다. 국민들은 이 녹취록의 내용보다, 정주영 후보측에서 '''불법 도청'''을 감행하였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였다. 결국 정주영 후보는 역풍을 맞았고, 정주영과 김영삼으로 분열될뻔한 영남지역 표는 김영삼으로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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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거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이 [[부산]]의 어느 복요리 식당에서 발생한다. 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온 1992년 12월 11일, ‘초원복집’에는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과 부산직할시장, 부산지방경찰청장, 부산직할시 교육감 등의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김영삼 대통령을 당선시키기 위한 전략을 의논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서는 지역감정을 부추길 필요가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하였다. 이들의 발언은 정주영 후보 측에서 설치한 녹음기에 의해 모두 기록되고 있었고, 정주영 후보측에서는 선거판을 막판에 뒤흔들어보려는 속셈으로 이 녹취록을 언론에 공개하였다. 하지만 불똥은 다른 곳으로 튀었다. 국민들은 이 녹취록의 내용보다, 정주영 후보측에서 '''불법 도청'''을 감행하였다는 점에 더욱 주목하였다. 결국 정주영 후보는 역풍을 맞았고, 정주영과 김영삼으로 분열될뻔한 영남지역 표는 김영삼으로 집중되었다.
  
 
=== 선거 광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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