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선거 편집하기

누리위키, 온 누리의 백과사전

경고: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하면 IP 주소가 공개되게 됩니다. 로그인하거나 계정을 생성하면 편집자가 사용자 이름으로 기록되고,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편집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저장해주세요.
최신판 당신의 편집
240번째 줄: 240번째 줄:
  
 
== 선거 이후 ==
 
== 선거 이후 ==
[[김영삼]]이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군부’출신이 아닌 ‘민간인’출신의 대통령의 정권임을 강조하기 위해 정부 이름을 [[문민정부]]로 지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과감한 재벌개혁 등 대한민국의 진정한 경제적,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려 힘썼다.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12·12 쿠데타]]의 주범자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시켰다. 남북관계를 개선시켰으며, '''일본의 버르장버리를 고쳐놓겠다'''고 외치며, 일본의 침략야욕에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이 같은 노력으로 한때 김영삼의 지지율은 90%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정권 말기에 터진 [[IMF 구제금융사태]]는 그동안의 공적들을 모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
[[김영삼]]이 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군부’출신이 아닌 ‘민간인’출신의 대통령의 정권임을 강조하기 위해 정부 이름을 [[문민정부]]로 지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5년 임기동안 대한민국의 진정한 경제적,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하려 힘썼다. 역사바로세우기를 통해 [[12·12 쿠데타]]의 주범자인 [[전두환]]과 [[노태우]]를 구속시켰다. 남북관계를 개선시켰으며, 일본의 침략야욕에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한때 김영삼의 지지율은 90%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정권 말기에 터진 [[IMF 구제금융사태]]는 그동안의 공적들을 모두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김대중은 선거 다음날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선거 패배를 겸허하게 인정하였다. 지난 두 번의 대통령선거([[1971년 대통령선거]],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부정선거라며 길길이 날뛰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다만 일부 국민들은 [[초원복집사건]]이 벌어졌던 이번 선거를 부정선거, 관건선거로 정의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김대중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일반 시민이 되겠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김대중은 지지자들과 정치계 인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자신의 결정을 확고히 하려는 뜻에서 [[영국]]으로 떠난다. <del>그런데 다음 대선에서는 김대중이 당선되었다. 읭?</del>
 
김대중은 선거 다음날의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선거 패배를 겸허하게 인정하였다. 지난 두 번의 대통령선거([[1971년 대통령선거]],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부정선거라며 길길이 날뛰었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다만 일부 국민들은 [[초원복집사건]]이 벌어졌던 이번 선거를 부정선거, 관건선거로 정의하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김대중은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일반 시민이 되겠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정계 은퇴를 선언'''한다. 김대중은 지지자들과 정치계 인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자신의 결정을 확고히 하려는 뜻에서 [[영국]]으로 떠난다. <del>그런데 다음 대선에서는 김대중이 당선되었다. 읭?</del>

누리위키에서의 모든 기여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동일조건변경허락 라이선스로 배포된다는 점을 유의해 주세요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누리위키:저작권 문서를 읽어주세요). 만약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문서를 저장하지 말아 주세요.
또한, 직접 작성했거나 퍼블릭 도메인과 같은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보증해야 합니다. 저작권이 있는 내용을 허가 없이 저장하지 마세요!

취소 편집 도움말 (새 창에서 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