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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14대선그래프.jpg|500픽셀|섬네일|center|14대 대선 지역별 득표수]] | | [[파일:14대선그래프.jpg|500픽셀|섬네일|center|14대 대선 지역별 득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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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김대중]] 라이벌 매치로 치러진 이 선거에서, 김영삼은 [[삼당합당]]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김영삼은 [[김대중]]의 유일한 연고지인 [[호남]]과 호남 이주민이 많은 [[서울]]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선거에서 손쉽게 승리하였다.
| + | 3당합당으로 인해 김대중의 유일한 연고지가 되어버린 호남지역에서는 90%내외(광주 96%, 전남 92%, 전북 89%)의 사기급 득표율로 김대중을 밀어주었고 호남 출신 이주자가 많은 서울에서도 38%의 득표율로 선전하였다. 그러나 [[영남]] 지역에서는 초원복집사건의 영향으로 [[김영삼]]이 정주영 후보를 제치고 60~70%내외의 높은 득표율을 독식할 수 있었다. 득표율 자체로만 보면 영남의 결집력이 호남의 결집력보다 떨어지지만, 영남의 인구 자체가 호남보다 많기 때문에 김영삼은 영남 하나만으로 호남에서의 실표를 모두 커버할 수 있었다. 그 이외의 지역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고르게 높은 득표율을 확보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김영삼이 큰 표차로 당선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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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수도권''': 호남 출신 이주민이 많은 서울에서는 김대중이 근소한 차로 다득표에 성공하였지만 지난 선거에서 노태우와 김영삼을 지지하던 인천과 경기에서는 김영삼을 밀어주면서 수도권 판세는 김영삼이 가져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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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남''': 김영삼의 연고지인 부산-경남지역에서는 김영삼을 크게 밀어주었고(부산 73%, 경남 72%), 본래 노태우의 연고지였던 대구-경북지역도 삼당합당으로 인해 김영삼의 연고지가 되었다(대구 60%, 경북65%). 이 선거를 계기로, 남/북으로 갈라져있던 영남은 보수진영의 가장 든든한 표밭이 된다. [[초원복집사건]]으로 인해 타 지역과 달리 보수표가 김영삼과 정주영으로 분열되지 않고 김영삼에 집중되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보수진영의 필승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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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호남''': 3당합당으로 인해 김대중의 유일한 연고지가 되어버린 호남지역에서는 90(광주 96%, 전남 92%, 전북 89%)의 사기급 득표율로 김대중을 밀어주었다. 하지만 영남의 1/2 수준인 호남인구로는 영남을 이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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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충청''': 원래 [[김종필]]의 연고지었던 충청지역은 3당합당으로 인해 [[김영삼]]의 연고지로 편입되었다. 이로서 김영삼은 충청지역에서의 다득표를 확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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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원''': 전통적인 보수 지역인 강원도에서는 김영삼과 더불어 정주영이 선전을 거두었다. 정주영이 강원에서 34%의 득표율을 확보하며 선전한 이유는 '민주투사' 김영삼보다 '재벌회장' 정주영이 더 보수 색체가 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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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 이후 == | | == 선거 이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