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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는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대공황]]이 전 세계를 덮쳤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독일의 경우 앞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이미 식민지도 모두 빼앗겨 버리고 전쟁배상금도 채 갚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 사태의 심각성이 더했다. 독일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군사력을 확장시켜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고 하였다. 1933년엔 [[아돌프 히틀러]]는 이른바 “제 3제국”이라고 불리는 [[나치 독일]]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의회와 정부를 모두 장악하고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1929년에는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대공황]]이 전 세계를 덮쳤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독일의 경우 앞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이미 식민지도 모두 빼앗겨 버리고 전쟁배상금도 채 갚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 사태의 심각성이 더했다. 독일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군사력을 확장시켜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고 하였다. 1933년엔 [[아돌프 히틀러]]는 이른바 “제 3제국”이라고 불리는 [[나치 독일]]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의회와 정부를 모두 장악하고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히틀러는 모든 게르만 족을 단일 국가로 통일시키려 하였고, 결과적으로 게르만 민족의 나라인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폴란드]]와 강제로 관세 동맹을 맺었던 [[단치히 자유시]]를 병합하고자 하였다. 사실 단치히 자유시는 주민 95%가 독일인이었으나 폴란드의 항구 이용 편의를 위해 독일에세 강제로 분리된 땅이었다. 하지만, 히틀러는 단치히 뿐만 아니라 다른 폴란드 영토까지도 요구하려 했고 이러한 움직임에 반발한 폴란드는 단치히 병합에 반대하였다. 결국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독일이 승승장구하면서 곧 승리를 거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43년 치러진 [[소련]]과의 [[쿠르스크 전투]]를 계기로 하여 독일의 동부 전선은 차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독일은 [[베를린]]이 포위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1945년 5월 8일, 항복을 선언하였다. 전쟁의 결과로 독일은 동부의 많은 영토를 잃었으며, 독일 영토의 서쪽은 연합국이, 동쪽은 소련이 점령하면서 각각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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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모든 게르만 족을 단일 국가로 통일시키려 하였고, 결과적으로 게르만 민족의 나라인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1918년 이전 독일의 영토였던 [[폴란드]]의 일부 영토를 가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폴란드는 독일에게 순순히 영토를 돌려주지 않았고, 결국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독일이 승승장구하면서 곧 승리를 거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43년 치러진 [[소련]]과의 [[쿠르스크 전투]]를 계기로 하여 독일의 동부 전선은 차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독일은 [[베를린]]이 포위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1945년 5월 8일, 항복을 선언하였다. 전쟁의 결과로 독일은 동부의 많은 영토를 잃었으며, 독일 영토의 서쪽은 연합국이, 동쪽은 소련이 점령하면서 각각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었다.
  
 
이후 서독과 동독에는 각각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서독과 동독이 분할 점령하고 있던 [[베를린]]에는 [[베를린 장벽]]이 들어서면서 양국의 대결 국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던 1980년대, 소련의 개방정책 추진 등 공산주의 체제 붕괴와 함께 자유화, 민주화의 바람이 동독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1989년, 양국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 되는 형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 통일이 선포된 날, 베를린 시민들은 직접 [[망치]]를 들고 나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이후 서독과 동독에는 각각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서독과 동독이 분할 점령하고 있던 [[베를린]]에는 [[베를린 장벽]]이 들어서면서 양국의 대결 국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던 1980년대, 소련의 개방정책 추진 등 공산주의 체제 붕괴와 함께 자유화, 민주화의 바람이 동독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1989년, 양국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 되는 형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 통일이 선포된 날, 베를린 시민들은 직접 [[망치]]를 들고 나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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