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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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는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대공황]]이 전 세계를 덮쳤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독일의 경우 앞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이미 식민지도 모두 빼앗겨 버리고 전쟁배상금도 채 갚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 사태의 심각성이 더했다. 독일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군사력을 확장시켜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고 하였다. 1933년엔 [[아돌프 히틀러]]는 이른바 “제 3제국”이라고 불리는 [[나치 독일]]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의회와 정부를 모두 장악하고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 1929년에는 [[미국]]에서 시작한 [[경제대공황]]이 전 세계를 덮쳤다. 독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독일의 경우 앞서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이미 식민지도 모두 빼앗겨 버리고 전쟁배상금도 채 갚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 그 사태의 심각성이 더했다. 독일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군사력을 확장시켜 다른 나라를 침략하려고 하였다. 1933년엔 [[아돌프 히틀러]]는 이른바 “제 3제국”이라고 불리는 [[나치 독일]]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의회와 정부를 모두 장악하고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 ||
− | 히틀러는 모든 게르만 족을 단일 국가로 통일시키려 하였고, 결과적으로 게르만 민족의 나라인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폴란드]] | + | 히틀러는 모든 게르만 족을 단일 국가로 통일시키려 하였고, 결과적으로 게르만 민족의 나라인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히틀러는 1918년 이전 독일의 영토였던 [[폴란드]]의 일부 영토를 가지기를 원했다. 하지만 폴란드는 독일에게 순순히 영토를 돌려주지 않았고, 결국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전쟁 초기에는 독일이 승승장구하면서 곧 승리를 거둘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43년 치러진 [[소련]]과의 [[쿠르스크 전투]]를 계기로 하여 독일의 동부 전선은 차츰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독일은 [[베를린]]이 포위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1945년 5월 8일, 항복을 선언하였다. 전쟁의 결과로 독일은 동부의 많은 영토를 잃었으며, 독일 영토의 서쪽은 연합국이, 동쪽은 소련이 점령하면서 각각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되었다. |
이후 서독과 동독에는 각각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서독과 동독이 분할 점령하고 있던 [[베를린]]에는 [[베를린 장벽]]이 들어서면서 양국의 대결 국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던 1980년대, 소련의 개방정책 추진 등 공산주의 체제 붕괴와 함께 자유화, 민주화의 바람이 동독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1989년, 양국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 되는 형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 통일이 선포된 날, 베를린 시민들은 직접 [[망치]]를 들고 나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 이후 서독과 동독에는 각각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가 들어서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서독과 동독이 분할 점령하고 있던 [[베를린]]에는 [[베를린 장벽]]이 들어서면서 양국의 대결 국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던 1980년대, 소련의 개방정책 추진 등 공산주의 체제 붕괴와 함께 자유화, 민주화의 바람이 동독에도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1989년, 양국 국민들의 요구에 의해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 되는 형식으로 통일이 이루어졌다. 통일이 선포된 날, 베를린 시민들은 직접 [[망치]]를 들고 나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