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편집하기
누리위키, 온 누리의 백과사전
편집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저장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9번째 줄: | 9번째 줄: | ||
[[파일:6월민주항쟁.jpg|250픽셀|섬네일|6월 민주항쟁(1987).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피로써 쟁취된 것이다.]] | [[파일:6월민주항쟁.jpg|250픽셀|섬네일|6월 민주항쟁(1987).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피로써 쟁취된 것이다.]] | ||
− | + |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공자]]의 민본(民本)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본사상이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사상으로, 백성을 무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으로서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 인권과 행복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민본사상에서 백성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주체가 아닌 수혜자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와는 구별된다. | |
해방 후 [[미국]]은 [[대한민국]]에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를 이식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지만 사사오입 개헌 등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무리하게 연임하려고 하여 국민의 반발을 샀다. 결국 [[3·15 부정선거]]가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자극하여 [[4·19 혁명]]을 일으키면서 자유당 독재는 끝이 났다. | 해방 후 [[미국]]은 [[대한민국]]에 서구식 민주주의 제도를 이식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지만 사사오입 개헌 등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정권을 무리하게 연임하려고 하여 국민의 반발을 샀다. 결국 [[3·15 부정선거]]가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자극하여 [[4·19 혁명]]을 일으키면서 자유당 독재는 끝이 났다. | ||
15번째 줄: | 15번째 줄: | ||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 박정희는 군사독재를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포장하며 스스로 정당화시키려 노력하였다. 결국 유신독재체제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오며 [[부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났고, 박정희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암살되었다. |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켰다. 박정희는 군사독재를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포장하며 스스로 정당화시키려 노력하였다. 결국 유신독재체제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오며 [[부산]],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났고, 박정희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손에 암살되었다. | ||
− | 또다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은 정권을 잡을 명분이 부족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민주화 요구를 폭력으로 진압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드디어, 1987년 [[6월 민주항쟁]]를 통해 대한민국에는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 | + | 또다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은 정권을 잡을 명분이 부족했다.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민주화 요구를 폭력으로 진압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국민의 민주주의 의식을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드디어, 1987년 [[6월 민주항쟁]]를 통해 대한민국에는 ‘제도적인’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 이후 [[김영삼]] 대통령 시기에 대한민국은 실질적인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
== 같이 보기 == | == 같이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