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뤼흐 스피노자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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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대사|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바뤼흐 스피노자'''({{llang|nl|Baruch Spinoza}})는 [[네덜란드]]의 [[철학자]]. 1632년11월 24일, [[암스테르담]]에서 출생했다. 포르투갈 계열의 [[유대인]] 상인의 아들. 처음에는 유대교단 학교에서 공부하였으나, 졸업 후 자신만의 인문학적인 사상을 고집함으로써 [[교회]]에서 이단 심판을 받고 쫓겨나기도 했다. 렌즈 가공술에 일가견이 있었고, 왕정보다 공화정에 손을 들어주어 핍박을 받았다. 이후 1677년, 렌즈 가공에 의한 미세 유리 과다흡입으로 폐결핵이 생겨 세상을 떠났다. [[데카르트]]와 동시대인으로 근대 철학의 한 획을 그었다. [[범신론]]과 [[유물론]]에 끼친 영향이 크다. [[니체]], [[질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이 존경을 마다하지 않고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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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철학자]]. 1632년11월 24일, [[암스테르담]]에서 출생했다. 포르투갈 계열의 [[유대인]] 상인의 아들. 처음에는 유대교단 학교에서 공부하였으나, 졸업 후 자신만의 인문학적인 사상을 고집함으로써 [[교회]]에서 이단 심판을 받고 쫓겨나기도 했다. 렌즈 가공술에 일가견이 있었고, 왕정보다 공화정에 손을 들어주어 핍박을 받았다. 이후 1677년, 렌즈 가공에 의한 미세 유리 과다흡입으로 폐결핵이 생겨 세상을 떠났다. [[데카르트]]와 동시대인으로 근대 철학의 한 획을 그었다. [[범신론]]과 [[유물론]]에 끼친 영향이 크다. [[니체]], [[질 들뢰즈]]와 같은 철학자들이 존경을 마다하지 않고 표했다.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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