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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언은 한국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로 10년 넘게 이어진 한국와 일본 사이의 화해 분위기는 하룻밤 꿈으로 허무하게 끝났고, 한류는 싸늘하게 식었다. 일본 정치계에서 우익 세력이 힘을 얻었으며,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혐한]] 감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1999년부터 2012년 이전까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하는 비율이 비호감 비율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으나, 2012년을 기점으로 비호감이라 응답하는 비율이 호감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 발언은 한국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서는 가히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로 10년 넘게 이어진 한국와 일본 사이의 화해 분위기는 하룻밤 꿈으로 허무하게 끝났고, 한류는 싸늘하게 식었다. 일본 정치계에서 우익 세력이 힘을 얻었으며,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혐한]] 감정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1999년부터 2012년 이전까지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호감을 느끼고 있다고 답하는 비율이 비호감 비율의 2배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이었으나, 2012년을 기점으로 비호감이라 응답하는 비율이 호감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 이후로 한국의 [[반일감정]]과 일본의 [[혐한감정]]은 서로가 서로의 양분으로 삼으며 공고하게 유지되었다. 2012년 이후로 한일관계는 [[2015년 위안부 합의]], 2018년 [[한일 무역 분쟁]]과 그로 인한 [[노 재팬 운동]] 등의 사건에 따라 격랑을 겪었으나 반일과 혐한의 악순환이라는 큰 기조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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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로 한국의 [[반일감정]]과 일본의 [[혐한감정]]은 서로가 서로의 양분으로 삼으며 공고하게 유지되었다. 2012년 이후로 한일관계는 [[2015년 위안부 합의]], 2018년 [[한일 무역 분쟁]]과 그로 인한 [[노 재팬 운동]] 등의 사건에 따라 격랑을 겪었으나 반일과 혐한의 대립이라는 큰 기조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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