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선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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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당 운동 ===
 
=== 야당 운동 ===
 
5대, 6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은 [[박정희]]가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고, 당시 민주당의 중진들인 김도연, 김준연 등도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문제삼아 사상을 의심하는 글을 발표했으며, 민주당 구파였으나 당과 거리를 두던 [[허정]]도 박정희의 사상을 의심했다. [[한민당]]에 반감을 가졌던 농촌지역 주민들, 특히 해방 후와 6.25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박정희에게 몰표를 주는 이변이 발생했다. 6대 대선에서는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허정과 경합했는데 그가 사퇴할 것처럼 보이다가 사퇴하지 않자 다혈질이던 허정과 심하게 싸웠고<ref>허정, 내일을 위한 증언 (샘터사, 1979)</ref>, 허정이 물러서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5대, 6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보선은 [[박정희]]가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고, 당시 민주당의 중진들인 김도연, 김준연 등도 박정희의 남로당 경력을 문제삼아 사상을 의심하는 글을 발표했으며, 민주당 구파였으나 당과 거리를 두던 [[허정]]도 박정희의 사상을 의심했다. [[한민당]]에 반감을 가졌던 농촌지역 주민들, 특히 해방 후와 6.25 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박정희에게 몰표를 주는 이변이 발생했다. 6대 대선에서는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허정과 경합했는데 그가 사퇴할 것처럼 보이다가 사퇴하지 않자 다혈질이던 허정과 심하게 싸웠고<ref>허정, 내일을 위한 증언 (샘터사, 1979)</ref>, 허정이 물러서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5대 대선때는 박정희가 패할 것을 대비해 [[김형욱]] 등이 윤보선을 암살하려 했지만, 미국 측에서 보호했다 한다.<ref>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5/02/005000000200502141745001.html</ref>
 
  
 
1972년 [[장준하]] 등과 함께 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정당해산령으로 폐쇄되었고 [[1979년]] 박정희의 암살을 계기로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1972년 [[장준하]] 등과 함께 국민당을 창당했으나 정당해산령으로 폐쇄되었고 [[1979년]] 박정희의 암살을 계기로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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