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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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llang|fr|République française}}), 줄여서 '''프랑스'''는 [[서유럽]]에 위치한 [[나라]]이다. [[수도]]는 [[파리(프랑스)|파리]]이다. [[유럽 연합]](EU)의 주요 회원국 중 하나이기도 하다. 프랑스는 흔히 [[문화]]·[[예술]]의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루브르박물관]], [[에펠탑]], [[개선문]], [[노트르담]] 등 건축물과 유적지가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프랑스는 하위 행정구역으로 22개의 [[레지옹]](région)으로 나뉘며, 레지옹은 다시 96개의 [[데파르트망]](départements)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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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공화국'''({{llang|fr|République française}}), 줄여서 '''프랑스'''는 [[서유럽]]에 위치한 [[나라]]이다. [[수도]]는 [[파리(프랑스)|파리]]이다. [[유럽 연합]](EU)의 주요 회원국 프랑스는 하위 행정구역으로 22개의 [[레지옹]](région)으로 나뉘며, 레지옹은 다시 96개의 [[데파르트망]](départements)으로 나뉜다.  
  
 
프랑스는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쭉 [[강대국]]의 지위에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서아프리카 및 동남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식민지|식민지 제국]]을 만든 바 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8,2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프랑스를 찾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 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는 또한 [[UN]]의 창립 회원이기도 하며, [[G8]]의 한 국가이기도 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영구 회원이기도 한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지니고 있다.
 
프랑스는 17세기부터 지금까지 쭉 [[강대국]]의 지위에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서아프리카 및 동남아프리카를 잇는 거대한 [[식민지|식민지 제국]]을 만든 바 있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8,200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프랑스를 찾고 있다. 프랑스는 [[유럽 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다. 프랑스는 또한 [[UN]]의 창립 회원이기도 하며, [[G8]]의 한 국가이기도 하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5개 영구 회원이기도 한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핵무기]]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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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4세기 경, [[독일]] 지역에 살던 부족민인 [[프랑크 족]]이 갈리아 족을 침략했다. “프랑스”라는 이름이 나온 것도 이 때부터였다. 프랑크 족은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기독교로 국교를 변경한 첫 부족이기도 하다. 843년, [[베르됭 조약]]이 체결되면서 프랑크 제국은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 중 가장 면적이 넓은 서프랑크왕국은 현대 프랑스의 초석이 되었다. [[카롤링거]] [[왕조]]는 987년까지 서프랑크를 통치했으며, 그 뒤를 이어 [[위그 카페]](Hugh Capet)가 왕위에 오르면서 [[카페 왕조]]가 세워졌다. 이후 프랑스 왕국은 숱한 전쟁과 왕조 교체를 거쳐 강대국의 입지를 다졌다. 17세기, [[루이 14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왕권이 가장 막강하게 되어 스스로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루이 14세가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의 절대군주로서 왕의 말이 곧 법인 시대를 만들었으며, 왕의 권력은 신이 주신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하여 귀족들과 함께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루이 14세의 방탕한 생활은 나중에 [[프랑스 대혁명]]의 발생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유럽의 최강대국이 된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프랑스어]]는 국제 [[외교]]관계에서 통용되는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기원후 4세기 경, [[독일]] 지역에 살던 부족민인 [[프랑크 족]]이 갈리아 족을 침략했다. “프랑스”라는 이름이 나온 것도 이 때부터였다. 프랑크 족은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기독교로 국교를 변경한 첫 부족이기도 하다. 843년, [[베르됭 조약]]이 체결되면서 프랑크 제국은 세 부분으로 나뉘게 되었는데, 이 중 가장 면적이 넓은 서프랑크왕국은 현대 프랑스의 초석이 되었다. [[카롤링거]] [[왕조]]는 987년까지 서프랑크를 통치했으며, 그 뒤를 이어 [[위그 카페]](Hugh Capet)가 왕위에 오르면서 [[카페 왕조]]가 세워졌다. 이후 프랑스 왕국은 숱한 전쟁과 왕조 교체를 거쳐 강대국의 입지를 다졌다. 17세기, [[루이 14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왕권이 가장 막강하게 되어 스스로 “짐이 곧 국가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루이 14세가 이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루이 14세는 절대왕정의 절대군주로서 왕의 말이 곧 법인 시대를 만들었으며, 왕의 권력은 신이 주신 것이라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했으며, [[베르사유 궁전]]을 건축하여 귀족들과 함께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루이 14세의 방탕한 생활은 나중에 [[프랑스 대혁명]]의 발생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유럽의 최강대국이 된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게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프랑스어]]는 국제 [[외교]]관계에서 통용되는 공용어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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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혁명]]이 터질 때까지 [[군주제]]를 유지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 1793년 국왕 [[루이 16세]]와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사실 루이 16세의 경우 이전의 국왕인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에 비하면 검소한 생활을 했고, 나름 프랑스의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해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국민들, 특히 [[부르주아]]로 통칭되는 제 3신분들의 대두,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 등 당시 프랑스의 사회문제가 워낙 심각했던 터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막지 못하고 결국 처형된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이 아닌가?”라는 무개념 발언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러한 발언을 한 바 없으며, 이는 당시 민중들을 선동시키기 위해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계몽주의]] 운동도 대부분 프랑스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18세기경 여러 중요한 [[과학]]적 발견들을 이뤘다.<ref>이 시기에 활동하던 대표적인 프랑스 과학자로는 [[라부아지에]]가 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이 바로 라부아지에이다.</ref> 또한 이 시기 프랑스는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의 해외 침략을 일삼아 거대한 식민지 제국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질 때까지 [[군주제]]를 유지했다. 프랑스 혁명의 결과, 1793년 국왕 [[루이 16세]]와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사실 루이 16세의 경우 이전의 국왕인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에 비하면 검소한 생활을 했고, 나름 프랑스의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해 개혁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국민들, 특히 [[부르주아]]로 통칭되는 제 3신분들의 대두, 계속되는 가뭄으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 등 당시 프랑스의 사회문제가 워낙 심각했던 터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막지 못하고 결국 처형된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될 것이 아닌가?”라는 무개념 발언을 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러한 발언을 한 바 없으며, 이는 당시 민중들을 선동시키기 위해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불과 몇 년 뒤인 1799년에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공화국을 통치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스스로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유럽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나폴레옹의 지배는 끝나고, 프랑스는 다시 왕정 국가로 되돌아갔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지 불과 몇 년 뒤인 1799년에는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공화국을 통치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스스로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며, 유럽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나폴레옹의 지배는 끝나고, 프랑스는 다시 왕정 국가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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