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빈 장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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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grape (토론 | 기여)님의 2017년 12월 2일 (토) 22:0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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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빈 장씨조선 숙종의 3번째 왕비이자 후궁이다.

설명[편집]

희빈 장씨의 이름은 옥정으로, 역관 장현의 장녀이다. 당시에 당파싸움이 심했는데, 남인북인과의 대립이 특히 심각했다.

숙종은 당시 어머니가 명성왕후 김씨인데, 그녀는 북인이었다. 그래서 북인을 싫어했던 숙종이 장씨를 데려다가 궁녀로 지내게 했다.

명성왕후는 남인에 속해있던 희빈 장씨를 특히 싫어했는데, 그래서 북인의 세력에 놓여있었던 민유중의 딸인 인현왕후를 맞아드리게 된다. 그러나 인현왕후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으므로 숙종이 좋아하지 않았다.

어느날, 명성왕후가 병으로 죽자, 숙종이 다시 장씨를 맞이하게 된다. 장씨가 아들을 낳게 되자 숙종은 장씨의 아들을 1살도 채 안 되어 세자로 책봉하게 된다. 세자를 낳은 덕택에 장씨는 후궁에서 벗어나, 왕비로 책봉하게 된다.

장씨는 인현왕후가 복권되자 후궁으로 다시 된다. 그 이유는 《인현왕후전》에 의하면 장씨가 너무 성격이 거칠고 숙종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성격에 있다고 한다.

나중에 희빈으로 강등된 장씨는 사약을 받고 죽게 되는데, 그의 아들인 세자는 나중에 왕이 된다.

역사가의 주장으로 볼 때 《인현왕후전》에서 나오는 희빈 장씨에 대해 평가가 너무 왜곡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 사사된 장씨의 아들이 왕이 되었다면 이는 장씨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희빈 장씨의 그릇된 평가와 그녀와 관련된 부정적인 인식은 요즘에 와서 다시 고치게 되는 작업을 다시 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