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토론:블루시티/성선설과 폭력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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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블루시티님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글의 논지 전개가 당혹스럽다는 생각에 글을 남겨봅니다. 대한민국의 문화가 유교와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과연 포르노 문제와 게임 산업 문제가 흔히 말하는 ‘성선설’의 문제와 관련되어―성선설 광신도라고 하시는 걸 봐서―부정적인 현실을 낳았다는 주장을 하기에는 성선설을 오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양에도 특히 성선설과 비슷한 설, 로크의 자연상태에 관한 이론이라든지 더 나이가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 등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믿는 신봉자들(대체로 사회주의자들)도 사회가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고 사회적 체제에 대한 고찰이 각 개인의 행동 요소를 결정한다고 봅니다. 뭐 부자 동네 출신보다 빈민가 출신들이 범죄율이 높다는 단순한 사실만 봐도 일리 있는 사실이죠. 즉 인간은 본래적으로 상호부조적 생물, ‘서로 돕는’ 생물이라는 것을 전제하에 두기에 그러한 개개인의 개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이자 서로 공동의 협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이들 목표이고요. “왜냐면 다양한 견해들이 자유롭게 논의되고 자유롭게 투쟁할 때, 기존의 어떤 권력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때, 바로 그때가 인간의 지혜가 가장 위대한 발전을 이룩한 시대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형식과 가능한 수준에서 모든 가능한 목표를 갖는 그런 사회는 자발적인 연합과 최대의 발전을, 이와 더불어 개인의 가장 완전한 발전을 추구해야 합니다.”라고 <아나키즘의 이상>에서 크로포드킨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인간의 본성적 자발성과 상호부조성을 믿고 발전된 사회의 사례가 바로 유럽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시스템입니다. 대표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 프랑스에서도 비디오 게임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고, 비디오 게임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2449).

다시 말해 우리사회의 그러한 성선설 신봉자들이 그토록 다수 존재한다면 사회 구조가 잘못되었기에 그러한 사회 구조의 문제를 부각시켜 대대적인 개혁이 이루어졌어야 망정이지 폭력성에 관한 문제를 게임이나 포르노처럼 엉뚱한 곳에 치부시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 위의 크로포트킨이라든가 로크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 다른 의미로 성선설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회구조적 폭력이 개인에게 가진 스트레스와 폭력성을 자극시켜 그러한 미디어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고 합니다.

물론 블루시티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인간의 외부적 요소의 영향이 바로 인간의 악적인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는 성선설에서 제시된 주장이고, 이를 잘못 해석하고 받아들인 이들이 게임 산업 및 포르노 산업 등 엉뚱한 요소에 치부하는 것 탓이겠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상하게 중요한 사회 개혁적 측면, 노동, 산업 재해, 교육 등 정작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여가 요소에 대해, 쓸데없는 곳에 신경 쓴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제대로 된 성선설 신봉자(그것이 극단적일지라도)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성선설 극단주의’에 의한 오류가 아니라 성선설을 단지 도구로써 이용하여, 오도된 성선설로 다양성을 파괴시키는 자들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니손이 (토론)

비루한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저는 이쪽(철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를 전공중이라, 지식의 깊이가 상당히 얕을 수밖에 없다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또한, 글을 쓰다 보니 논지 전개가 다소 뜬금없이 되어버려 제 의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실 제 기본적인 의견은 니손이님의 의견과 대부분 일치합니다. 저도 성선설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성선설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된 곳에 잘못된 방법으로 적용하는 일부 사람들을 비판하려는 것이 제 의도였습니다. 사실 성선설과 성악설은 흑과 백,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배치되거나 대립하는 사상이 아니라 동시에 참이 될 수 있는 명제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맹자가 말한 선악과 순자가 말한 선악은 다른 개념입니다.
맹자가 말한 선은 ‘우물가에서 놀던 아이가 발을 헛디뎌 우물에 떨어지려고 하면 누구나 걱정되고 우려되는 마음이 생기는 것’처럼 정말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있는 선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선은 모든 사람이 보편적, 선천적으로 가진 것입니다. 드물게 이런 형태의 선을 가지지 못하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불립니다. 즉, 성선설을 완전히 부정하고 성악설만을 긍정한다면 ‘전 세계 사람들은 모두 사이코패스’라는 잘못된 주장이 됩니다.
한편, 순자가 말한 선은 그런 당연한 형태의 선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의 선에 가깝습니다. 작게는 ‘빨간불에는 정지선에 멈추어 설 것’이나 ‘새치기를 하지 말 것’ 같은 것에서부터, ‘상대방의 소유물을 훔치지 말 것’, ‘상대방이 원치 않는 성관계를 강제로 하지 말 것’ 같은 것까지, 우리는 원시시대(자연 상태의 인간)에는 없었던 여러 사회적 규범들을 준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순자는 이러한 인위(人爲)적인 사회규범들을 학습하여 지키는 것을 선이라고 한 것입니다. 예컨대 타임머신을 타고 자연(自然)상태의 원시인을 현대에 대려온다면, 이 원시인은 앞서 제가 말한 사회적 규범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를 어기는 악행을 저지를 것입니다. 즉, 성악설을 완전히 부정하고 성선설만을 긍정한다면 이 원시인도 현대인과 다름없이-아니, 오히려 현대인보다 더 잘-행동해야겠지만, 이는 당연히 말이 안 됩니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악(惡)이고, 선(善)은 인위(人爲)이다’는 순자의 주장은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결국 두 사상 어느 면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았는가만 다를 뿐,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한국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을 흑과 백,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여기는 것이 보편적인 관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의 머릿속에서는 순자가 말한 선악과 맹자가 말한 선악의 개념이 서로 섞여버리면서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는 순자의 주장을 ‘사람의 본성은 사이코패스다’로 잘못 해석하였고, 이는 성선설을 긍정하고 성악설을 부정하는 현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까지면 그나마 다행인데, 오늘날의 일부 한국인들은 성선설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선악의 개념을 다시 순자의 선악개념으로 바꾸어, ‘인간은 (폭력게임이 없는)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폭력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 혹은 ‘인간은 (야동이 없는) 자연적인 상태에서는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 같은 희한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뭐 이런 얘기였습니다.--블루시티 (토론) 2014년 10월 30일 (목) 23:42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