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특급시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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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는 서기 [[918년]]부터 [[1392년]] 까지 있었던 고려의 수도이며. 원래 "송악", "송도"라고 불려져 왔었다. 그 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면서 송도라는 이름 대신, 「개성」 (開城 )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 개성시는 서기 [[918년]]부터 [[1392년]] 까지 있었던 고려의 수도이며. 원래 "송악", "송도"라고 불려져 왔었다. 그 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면서 송도라는 이름 대신, 「개성」 (開城 )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 ||
개성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삼]]으로 아주 유명했었는데, 그것이 조선시대 때 [[중국]]으로 수출되었을만큼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또한 개성은 [[평양직할시|평양]]과 [[서울특별시|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의 역할을 하였다. | 개성에서는 오래전부터 [[인삼]]으로 아주 유명했었는데, 그것이 조선시대 때 [[중국]]으로 수출되었을만큼 인기가 대단하였다고 한다. 또한 개성은 [[평양직할시|평양]]과 [[서울특별시|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의 역할을 하였다. | ||
− | 개성시는 [[1949년]]에 [[대한민국]]에 관할로 넘어와서 [[경기도]]에 속했으나, [[6·25전쟁]] 때 조선인민군이 수복하면서, [[1953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개성시는 그 후, 직할시로 승격해서, 도(都) 이상의 대우를 받았는데, 대한민국과 북조선과의 경제합작교류을 목적으로 하여금 2001년에 경제특구로 변하였다. | + | 개성시는 [[1949년]]에 [[대한민국]]에 관할로 넘어와서 [[경기도]]에 속했으나, [[6·25전쟁]] 때 조선인민군이 수복하면서, [[1953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개성시는 그 후, 직할시로 승격해서, 도(都) 이상의 대우를 받았는데, 대한민국과 북조선과의 경제합작교류을 목적으로 하여금 2001년에 경제특구로 변하였다. 그 후 2004년에 판문지구와 개성시와 합쳐, "개성공업지구"가 만들어졌다. |
− | 개성시는 고려시대 정궁인 「[[만월대]]」 터와, 유생들에게 교육을 관장하던 [[고려성균관]]으로 유명하다. | + | 개성시는 고려시대 정궁인 「[[만월대]]」 터와, 유생들에게 교육을 관장하던 [[고려성균관]]으로 유명하다. 옜날에는 고려천문대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이 곳에서는 또한, 고려시대의 마지막 충신인 [[정몽주]]가 [[이방원]]의 철퇴에 맞아 죽은 「[[선죽교]]」가 있다. 지금 북조선에 의해 세워진 개성시의 공공기관은 백화점과 도서관, 학생회관, 송도대학, 교육대학, 방직대학 등이 있으며, 공장은 인삼공장과 방직공장 등이 운영된다. |
[[분류:개성특급시]] | [[분류:개성특급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