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편집하기
누리위키, 온 누리의 백과사전
편집을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 편집을 되돌리려면 아래의 바뀐 내용을 확인한 후 저장해주세요.
최신판 | 당신의 편집 | ||
18번째 줄: | 18번째 줄: | ||
{{대사|조선왕조 오백년}} | {{대사|조선왕조 오백년}} | ||
− | '''조선'''({{llang|ko-Hani|朝鮮}})은 [[조선 태조|태조 이성계]]의 주도로 1392년 7월에 건국하여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 10월까지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왕조 국가이다. 조선의 전신인 [[고려]] 왕조의 수도는 [[개성]]이었으나, 조선 왕조는 오늘날의 [[서울]]로 수도를 옮겼다.<ref>다만 2대 왕인 [[정종]] 때 잠깐 수도를 개성으로 옮긴 적이 있긴 하다.</ref>조선은 초기에 [[여진족]]을 정복하여 그 영토를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확장하였다.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는 [[유교]]를 채택하였다. | + | '''조선'''({{llang|ko-Hani|朝鮮}})은 [[조선 태조|태조 이성계]]의 주도로 1392년 7월에 건국하여 [[대한제국]]이 선포된 1897년 10월까지 이어져 내려온 한국의 왕조 국가이다. 조선의 전신인 [[고려]] 왕조의 수도는 [[개성]]이었으나, 조선 왕조는 오늘날의 [[서울]]로 수도를 옮겼다.<ref>다만 2대 왕인 [[정종]] 때 잠깐 수도를 개성으로 옮긴 적이 있긴 하다.</ref>조선은 초기에 [[여진족]]을 정복하여 그 영토를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확장하였다. 조선은 [[한국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왕조이다.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는 [[유교]]를 채택하였다. |
조선은 중앙 정부의 통치력을 극대화시켜, 모든 영토를 실효 지배하였다. 조선이 기본 이념으로 채택한 [[유교]]는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갔으며, 주변국과의 활발한 문화, 과학, 문학, 기술 교류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1598)의 발발과 수차례 벌어진 [[청나라]]의 침입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의 국력을 약화시켰으며, 조선이 쇄국정책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 조선을 방문한 [[유럽]] 사람들이 이 나라에 [[은자의 왕국]](Hermit Kingdom)이라는 별칭을 붙여 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병자호란]](1636~1637)에서 조선은 청나라에 대해 항복을 선언하고 청나라와 군신(君臣)관계를 맺었다. 이후 거의 200년 동안 조선은 큰 전쟁 없는 평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동안 조선은 붕당정치의 폐해가 나타나는 등 크고 작은 내부적 문제에 시달렸다. | 조선은 중앙 정부의 통치력을 극대화시켜, 모든 영토를 실효 지배하였다. 조선이 기본 이념으로 채택한 [[유교]]는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갔으며, 주변국과의 활발한 문화, 과학, 문학, 기술 교류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임진왜란]](1592~1598)의 발발과 수차례 벌어진 [[청나라]]의 침입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의 국력을 약화시켰으며, 조선이 쇄국정책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되었다. 조선 후기에 조선을 방문한 [[유럽]] 사람들이 이 나라에 [[은자의 왕국]](Hermit Kingdom)이라는 별칭을 붙여 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병자호란]](1636~1637)에서 조선은 청나라에 대해 항복을 선언하고 청나라와 군신(君臣)관계를 맺었다. 이후 거의 200년 동안 조선은 큰 전쟁 없는 평화의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 동안 조선은 붕당정치의 폐해가 나타나는 등 크고 작은 내부적 문제에 시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