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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명이인}}
| + | '''한호'''는 [[조선 선조]] 때 서예가이다. 석봉은 그의 호이다. 석봉은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썼는데, 그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안한 체 집에 와서 글씨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어머니에게 자랑했다. 그러나 밤에 어머니의 가래떡을 써는 모습과 제대로 쓰지 못한 글씨를 보고 후회한다. 그래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서체는 [[석봉체]]라고 하는데, "한석봉천자문", "석봉서첩" 등의 석봉이 쓴 글씨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
− | == [[조선]] 중기의 서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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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호'''는 [[조선]]왕조 역대 제 15대 임금인 [[조선 선조|선조]] 때의 서예가이다. 석봉은 그의 호이다. 석봉은 어려서부터 글씨를 잘썼는데, 그 것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안한 체 집에 와서 글씨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어머니에게 자랑했다. 그러나 밤에 어머니의 가래떡을 써는 모습과 제대로 쓰지 못한 글씨를 보고 후회한다. 그래서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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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석봉체의 특징 ===
| + | [[분류:조선의 인물]] |
− | 그의 서체는 [[석봉체]]라고 하는데, 초기에는 「구양수체」(구양수라는 사람은 중국 당나라 때 서예가를 말한다)를 모방하는 듯 하다가, 나중에는 독자적인 방향으로 바뀐다. 「한석봉천자문」과 「석봉서첩」 등이 전해내려오고 있지만, 그 문헌들은 그가 쓴 글씨들을 누가 배껴서 탁본한 것이지, 그가 직접 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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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봉의 글씨는 외교문서에 사용되고, 양반가집안에서 집안을 장식하는 족자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중국의 사신들도 「왕희지의 필력보다 뛰어나다.」라고 할 정도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시 임금인 선조도 그의 필체를 크게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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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봉이 직접 쓴 글은 [[임진왜란]] 때 대부분이 없어졌지만, 그가 쓴 비문은 지금까지도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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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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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호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의 장군으로 조조의 [[둔전]]제도( 전투에 병사로 징발된 백성들이 전투중에서도 농사를 지을수 있게 하는 제도) 설치에 공을 세웠다. 그렇지만 [[삼국지연의]]에는 무능하고 멍청한 장수로 한낱 병사에게 목이 잘리는 걸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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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조선의 인물]][[분류:서예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