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ny I Hardly Knew Ye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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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ny I Hardly Knew Ye'''는 조세프 B. 조헤건({{llang|en|Joseph B. Geoghegan}})이 [[1867년]] [[영국]] [[런던]]에서 작사하고 발표한 곡이다. 다만, 원곡 자체는 그 이전인 18세기 후기나 19세기 전기 즈음 [[아일랜드]]에서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영국과 [[캔디 왕국]](kingdom of kandy)(현재 [[스리랑카]]에 위치한 나라)은 1795년 부터 1818년까지 전잰중이었다는 시대상황과<ref>[http://en.wikipedia.org/wiki/Kandyan_Wars Kandyan Wars, 『영어 위키피디아』]</ref> 가사 내용에 비추어 보면 [[반전가요]]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 '''Johnny I Hardly Knew Ye'''는 조세프 B. 조헤건({{llang|en|Joseph B. Geoghegan}})이 [[1867년]] [[영국]] [[런던]]에서 작사하고 발표한 곡이다. 다만, 원곡 자체는 그 이전인 18세기 후기나 19세기 전기 즈음 [[아일랜드]]에서 작곡된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영국과 [[캔디 왕국]](kingdom of kandy)(현재 [[스리랑카]]에 위치한 나라)은 1795년 부터 1818년까지 전잰중이었다는 시대상황과<ref>[http://en.wikipedia.org/wiki/Kandyan_Wars Kandyan Wars, 『영어 위키피디아』]</ref> 가사 내용에 비추어 보면 [[반전가요]]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 ||
− | 오래된 곡이다보니 저작권이 풀려 곡은 같으면서 가사만 다른 곡들이 상당히 많고, 가사 자체도 변형이 많다. [[1863년]] [[남북전쟁]] 당시 써진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이 그러하고, '개미들의 행진'({{llang|en|The Ants Go Marching One By One, The Ants came Marching}})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빙빙 돌아라'라는 [[번안곡]]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향토적인 | + | 오래된 곡이다보니 저작권이 풀려 곡은 같으면서 가사만 다른 곡들이 상당히 많고, 가사 자체도 변형이 많다. [[1863년]] [[남북전쟁]] 당시 써진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이 그러하고, '개미들의 행진'({{llang|en|The Ants Go Marching One By One, The Ants came Marching}})이 대표적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빙빙 돌아라'라는 [[번안곡]]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인터넷]]에서는 향토적인? 가사를 지닌 '후라이 똥튀김송'으로도 유명하다. |
== 대한민국에서 == | == 대한민국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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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년대 [[시위]]에서 '훌라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시위때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개사되어 불려졌고, 대통령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도 흔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불렸던 것은 '정의가'라는 별칭이 있었다. [[부산]] 고은 사진미술관은 5월 18일부터 7월 31일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기획전으로 '그날의 훌라전'을 열기도 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5/02/0200000000AKR20130502163200054.HTML 80년 5월을 기억한다…'그날의 훌라송'전, 『연합뉴스』, 2013년 5월 2일]</ref> | 70, 80년대 [[시위]]에서 '훌라송'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시위때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개사되어 불려졌고, 대통령 이름이 들어가는 경우도 흔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불렸던 것은 '정의가'라는 별칭이 있었다. [[부산]] 고은 사진미술관은 5월 18일부터 7월 31일까지 [[5·18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기획전으로 '그날의 훌라전'을 열기도 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3/05/02/0200000000AKR20130502163200054.HTML 80년 5월을 기억한다…'그날의 훌라송'전, 『연합뉴스』, 2013년 5월 2일]</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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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사 == | == 가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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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id ye run from me and the child<br> | Why did ye run from me and the child<br> | ||
Oh Johnny, I hardly knew ye.<br><br> | Oh Johnny, I hardly knew ye.<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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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br> | [3]<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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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eed your dancing days are done<br> | Indeed your dancing days are done<br> | ||
Oh Johnny, I hardly knew ye.<br><br> | Oh Johnny, I hardly knew ye.<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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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br> | [4]<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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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ll have to be left with a bowl out to beg<br> | You'll have to be left with a bowl out to beg<br> | ||
Oh Johnny I hardly knew ye.<br><br> | Oh Johnny I hardly knew ye.<br><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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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br> | [5]<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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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from the island of Sulloon<br> | All from the island of Sulloon<br> | ||
So low in flesh, so high in bone<br> | So low in flesh, so high in bone<br> | ||
− | Oh Johnny I hardly knew ye. | + | Oh Johnny I hardly knew ye.<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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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br> | [6]<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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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they never will take my sons again<br> | But they never will take my sons again<br> | ||
No they'll never take my sons again<br> | No they'll never take my sons again<br> | ||
− | Johnny I'm swearing to ye. | + | Johnny I'm swearing to 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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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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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 == 각주 == | ||
<references/> | <references/> | ||
− | [[분류:아일랜드의 | + | [[분류:아일랜드의 가요]] [[분류:대한민국의 가요]] [[분류:반전가요]] [[분류:민중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