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훈(1956년)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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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llang|ko-Hani|金正勳}}, [[1956년]] [[9월 1일]] ~ )은 [[북한]]의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감독을 맡았다.
 
'''김정훈'''({{llang|ko-Hani|金正勳}}, [[1956년]] [[9월 1일]] ~ )은 [[북한]]의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감독을 맡았다.
  
[[월드컵]] 이전 아시아 지역의 예선에서 B조 2위로 대표팀을 본선에 진출시킨 기량을 보여줬고 [[카타르]]와는 1:0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졌으나 이후 건설현장에서 본선리고 조별 예선에서 3전 전패, 특히 포르투갈전에서 7:0으로 참패했다. 이 때문에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아오지 탄광행이니 수용소행이니 조롱했는데 실제로 언론에서 건설현장에서 강제노동 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영국]]의 더 선지로부터 있었다. 후에 오보임이 밝혀졌으나 감독직에서 물러난 건 사실이고 본래 자신이 감독으로 있던 4.25 체육단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인만큼 곱게 넘어가지 못하고 사상투쟁회의라는 것이 열려서 체육관련 각계 인사들이 감독 및 대표팀에게 비판을 일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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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전 아시아 지역의 예선에서 B조 2위로 대표팀을 본선에 진출시킨 기량을 보여줬고 [[카타르]]와는 1:0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졌으나 이후 건설현장에서 본선리고 조별 예선에서 3전 전패, 특히 포르투갈전에서 7:0으로 참패했다. 이 때문에 당시 대한민국에서는 아오지 탄광행이니 수용소행이니 조롱했는데 실제로 언론에서 건설현장에서 강제노동 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영국]]의 더 선지로부터 <del>[[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del> 있었다. 후에 오보임이 밝혀졌으나 감독직에서 물러난 건 사실이고 본래 자신이 감독으로 있던 4.25 체육단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인만큼 곱게 넘어가지 못하고 사상투쟁회의라는 것이 열려서 체육관련 각계 인사들이 감독 및 대표팀에게 비판을 일삼았다고 한다.
  
 
3전 전패라는 부진한 성적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국가대표팀을 44년만에 본선에 진출시킨 공적만으로도 성과를 평가받아 AFC 올해의 감독상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3전 전패라는 부진한 성적에 책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의 국가대표팀을 44년만에 본선에 진출시킨 공적만으로도 성과를 평가받아 AFC 올해의 감독상의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물]]
 
[[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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