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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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당선은 대한민국에 새로 나타난 세대인 [[386세대]]와도 관련이 깊다. 386세대는 현재 30대이고,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세대는 학생시절 독재자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참가한 경험이 있으며, 반미(反美), 친북(親北) 성향을 띠고 있다. 이렇게 많은 관심 속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었으나,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과 흔히 [[조중동]]으로 줄여 부르는 보수 언론사들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의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들은 노무현을 무능하다고 비난하였으며, 신문지상에는 대통령을 모욕하는 기사가 연일 실렸다. 결과적으로, “행정수도 이전” 같은 노무현의 여러 정책들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 노무현의 당선은 대한민국에 새로 나타난 세대인 [[386세대]]와도 관련이 깊다. 386세대는 현재 30대이고,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이 세대는 학생시절 독재자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참가한 경험이 있으며, 반미(反美), 친북(親北) 성향을 띠고 있다. 이렇게 많은 관심 속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었으나, 보수 정당인 [[한나라당]]과 흔히 [[조중동]]으로 줄여 부르는 보수 언론사들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의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들은 노무현을 무능하다고 비난하였으며, 신문지상에는 대통령을 모욕하는 기사가 연일 실렸다. 결과적으로, “행정수도 이전” 같은 노무현의 여러 정책들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 ||
− |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 후, 노무현은 자신의 고향인 [[봉하마을]]로 귀향하였다. 하지만 퇴임 이후에도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이 곳을 계속 방문하자, [[한나라당]]은 이를 하나의 위협으로 여겼다. 14달 후, 노무현은 | + |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 후, 노무현은 자신의 고향인 [[봉하마을]]로 귀향하였다. 하지만 퇴임 이후에도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이 곳을 계속 방문하자, [[한나라당]]은 이를 하나의 위협으로 여겼다. 14달 후, 노무현은 [[검찰]]에 기소되었고 차후의 수사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다. 이 추문으로 인해 노무현의 지지세력과 [[열린우리당]]은 붕괴되었고, 열린우리당을 이어받은 [[민주당]]은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하며 제1당 자리를 한나라당에 내주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은 개인 컴퓨터에 [[유언]]을 남기고 봉하마을 뒷산의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하여 서거하였다. 이후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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