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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레디키 시절 (2009~2011) ===
 
=== 스레디키 시절 (2009~2011) ===
 
누리위키의 전신은 [[스레디키 (2009년)|스레디키]]이다. 스레디키는 2009년 10월 22일, 스레드형 한국어 커뮤니티 사이트인 [[스레딕]]의 하위 위키사이트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스레디키는 스레딕 이용자들이 모여 스레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이용 참여도는 높지 않았고 아무래도 위키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용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 문서의 품질이 떨어졌다. 중립성 유지 원칙은 말뿐이었고, 특히 스레딕 뒷담판에서 유래한 문서들은 악플 수준의 악담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된 것은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는 '''강정문서'''이었다. 강정문서란, 성의 없는 한 두 줄짜리 설명이 전부인 상태를 문서를 일컫는 말로, 문서가 속 빈 강정과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강정문서는 현재의 토막글과 같은 말이다.''' 이 강정문서 문제 때문에, 스레디키는 문서 수는 많아도 정작 볼 만한 문서는 드문 상태였다.  
 
누리위키의 전신은 [[스레디키 (2009년)|스레디키]]이다. 스레디키는 2009년 10월 22일, 스레드형 한국어 커뮤니티 사이트인 [[스레딕]]의 하위 위키사이트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스레디키는 스레딕 이용자들이 모여 스레딕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정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이용 참여도는 높지 않았고 아무래도 위키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용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 문서의 품질이 떨어졌다. 중립성 유지 원칙은 말뿐이었고, 특히 스레딕 뒷담판에서 유래한 문서들은 악플 수준의 악담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된 것은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는 '''강정문서'''이었다. 강정문서란, 성의 없는 한 두 줄짜리 설명이 전부인 상태를 문서를 일컫는 말로, 문서가 속 빈 강정과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강정문서는 현재의 토막글과 같은 말이다.''' 이 강정문서 문제 때문에, 스레디키는 문서 수는 많아도 정작 볼 만한 문서는 드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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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강정문서.png|섬네일|center|500픽셀|스레디키는 지나친 강정문서(토막글)로 비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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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 천지였던 스레디키에서 그나마 볼 만한 문서는 [[째원]] 문서 정도였다. 당시 네이버 블로그에서 활동하며 악명을 떨치던 째원의 행적을 정말 세세하게 정리해 두었는데, 이 정도로 이 분을 자세하게 까는 곳은 여기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이 문서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며, 스레디키의 인지도에도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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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딕은 편집 인원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키러들의 꾸준한 참여(와 많은 수의 강정문서 생성) 덕분에 2011년 8월에는 2,200여개의 문서를 갖춘 나름 중형급 위키로 성장하였다. 위키의 성장과 더불어 스레딕과는 관련 없는 일반 문서들의 비중이 늘어났는데, 이 때문에 스레디키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 비판은 향후 스레딕과는 관련 없는 잡학사전 성격의 누리위키가 개설되는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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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디키에 대한 비판은 당시 스레디키와 비슷한 규모를 가지며 스레디키와 라이벌 관계를 맺으며 발전하던 [[자유인사전]]의 [https://licentium.net/wiki/%EC%8A%A4%EB%A0%88%EB%94%95#.EC.8A.A4.EB.A0.88.EB.94.95_.EC.9C.84.ED.82.A4 스레딕 문서]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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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0 스레디키 데이터 소실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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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8·10 스레디키 데이터 소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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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데이터 소실이라니.png|300픽셀|섬네일|사건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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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디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누리위키가 개설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2011년 8월 10일, 스레딕 관리자의 어이없는 실수로 그동안 쌓아올린 스레디키의 모든 데이터가 하루아침에 삭제된 것이다. 위키 사이트로서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면서 스레디키 이용자들은 스레디키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였고, 결국 스레딕에서 떨어져 나와 2011년 9월 20일, 스레디키 이용자 Lhospital을 중심으로 [[누리위키]]라는 새로운 위키 사이트를 만들게 된다. [[구글]]에서 제공하는 자동 저장된 페이지를 토대로 사라진 2,200여개의 스레디키 문서 중 극히 일부를 누리위키에 복원하였으나, 복구되지 못한 대부분의 문서들은 그대로 소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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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부터 누리위키는 스레딕과의 별개의 위키사이트가 되며, 현재의 [[나무위키]]와 같은 종합 잡학사전 성격의 위키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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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세대 한국어 위키사이트와 누리위키 (2011~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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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누리위키대문.jpg|500픽셀|center|섬네일|초창기의 누리위키 대문(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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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딕에서 벗어난 종합 위키가 된 누리위키는 초창기부터 빠르게 발전하였다. 스레디키의 비판 중 하나가 스레딕과는 관련 없는 일반 문서가 많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누리위키에는 장점으로 작용하였다. 스레디키에서 일반 문서를 생성하던 이용자들은 누리위키에서 마음껏 문서를 생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스레디키의 문제였던 강정 문서는 소실되었으니 자연스레 문제가 해결되었다. 또한, 누리위키는 문서 수를 무턱대고 늘리기보다는 양질의 문서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강정문서 문제는 옛 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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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위키는 2010년대 초반, 한국어 위키사이트의 1세대 붐을 이끈 3개의 대형 사이트인 '''한국어 위키백과''', '''리그베다 위키''', '''한국어 백괴사전'''과 더불어 성장해왔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누리위키는 중형 종합 위키 중에서는 가장 큰 위키라는 인식이 있었다. 당시의 한국어 위키사이트 판도를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3강'''(위백, 리그베다, 백괴) '''1중'''(누리) 체제였다. 그 증거로, [[한국어 백괴사전]]에는 누리위키에서 온 이용자를 위한 별도의 도움말까지 마련해두고 있었다. 백괴사전에서 이러한 대우를 받은 위키는 위키백과, 리그베다 위키, 누리위키 셋뿐이었다. 누리위키는 대형 위키들처럼 인터넷 전반에 유명세를 떨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위키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누리위키는 가장 먼저 들러보는 맛집 정도는 되었다. 한때 중형 위키로까지 성장한 [[구스위키]]의 관리자는 누리위키 관리자와 함께 위키 운영과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고, 그 밖에도 [[일베저장소]]에서 한때 추진했던 [[일베위키]]에서는 누리위키를 [[좌파]]적이라고 비난하면서도 1차적으로 넘겨야 할 목표로 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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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는 스레딕과의 관계가 끊기면서 위키러가 아닌 일반인이 유입될 통로가 막혀버렸다. 그나마 스레딕 이용자에게는 알려져 있던 스레디키와는 달리 신생 위키인 누리위키는 외부에 알려질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한 마디로, 위키러만 아는 위키가 된 셈이다. 그나마 위키백과나 리그베다 위키에서 활동하다가 나온 사람들이 간간히 오면서 기여를 하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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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소실 사건이 2013년 7월에 한 번 더 반복되었다. 이 때에는 누리위키의 호스팅이 만료되었는데, 당시 누리위키 운영자 Lhospital이 부재중인 관계로 호스팅 연장을 하지 못하였고, 결국 또 다시 누리위키는 소멸되었다. 하지만 누리위키는 두 번의 데이터 말소 사태에도 불구하고 잡초 같은 생명력을 발휘하여 부활하였다.<ref>예수도 한 번 밖에 부활 못했는데 누리위키는 두 번이나 부활했다. 좀 짱인듯</ref> 첫 번째 데이터 말소 사태를 겪은 누리위키 이용자들이 이런 사태를 이미 대비해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때에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누리 위키]]에 백업해둔 자료와 TD5가 개별적으로 백업해둔 자료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복구는 비교적 수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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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대 한국어 위키사이트와 누리위키 (2015~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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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무시무시한위키.png|섬네일|350픽셀|디씨 [[위키갤러리]]의 인기글(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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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리그베다 위키 사유화 사태]]로 리그베다 위키가 무너지면서 한국어 위키사이트계 전반이 재편되며 큰 변화가 있었다. 리그베다 위키를 대체할 대체 위키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누리위키 또한 [[디시인사이드 위키갤러리]]에서 리그베다 위키의 대체제로 많은 관심이 모였다. 누리위키는 수년 동안 안정적인 운영을 하며 양질의 문서를 갖춘 것이 인구 유인 요소로 손꼽혔다. 고질적인 인구 부족으로 신음하던 누리위키에게 이것은 한 줄기 빛이었다. 수년 동안 못 받은 관심을 한 번에 받은 누리위키는 이제 새로운 시대로 도약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것이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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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리그베다 위키 이용자들은 누리위키에서 활동하기보다는 새로운 위키를 만들어 활동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 중에서 '''나무위키''', '''디시위키'''가 성공적으로 정착하며 새로운 대형위키로 자리 잡았다. 정리하자면 [[한국어 위키백과]], [[나무위키]], [[디시위키]]가 새로운 3강 체제를 형성하였다. 또한, 이 과정에서 [[리브레위키]], [[제타위키]], [[페미위키]]를 비롯한 여러 위키들이 등장하여 편집자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중형 위키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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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위키는 그렇게 좋은 기회를 놓쳐버렸다. 오히려 중형급 위키가 여럿 만들어지면서 중형 위키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기존의 누리위키에는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나마의 위안이었던 '중소형급 위키중에서는 누리위키가 최고'라는 타이틀이 무너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형급 위키에서의 인구 유입도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누리위키가 침몰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누리위키는 오히려 나름대로 이전시대보다 더 발전했다. 누리위키는 이제 신생위키가 아닌 역사가 오래된 위키가 되었고, 그에 따라서 위키 문서가 외부에 링크되거나 소개되는 일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수년 간에 걸친 데이터 축적의 산물이 빛을 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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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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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누리위키역사.png|400픽셀|right|스레디키-누리위키의 역사 연대표(200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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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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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엔진 !! 개설일 !! 폐쇄일 !! 존속 기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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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8CH 위키 || XE || [[2009년]] [[10월 22일]] || [[2010년]] [[1월 15일]] || 8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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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레디키 || 미디어위키 || [[2010년]] [[1월 15일]] || [[2011년]] [[8월 10일]] || 57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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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 위키 || 위키아 || [[2011년]] [[8월 23일]] ||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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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위키 || 미디어위키 || [[2011년]] [[9월 20일]] || [[2013년]] [[7월 6일]] || 65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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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위키 || 미디어위키 || [[2013년]] [[8월 4일]] ||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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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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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레디키 시절 (2009~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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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위키의 전신은 [[스레디키 (2009년)|스레디키]]이다. 스레디키는 2009년 10월 22일, 스레드형 한국어 커뮤니티 사이트인 [[스레딕]]의 하위 위키사이트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스레디키는 스레딕 이용자들이 모여 스레딕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들을 정리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이용 참여도는 높지 않았고 아무래도 위키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이용자들이 모여 있다 보니 문서의 품질이 떨어졌다. 중립성 유지 원칙은 말뿐이었고, 특히 스레딕 뒷담판에서 유래한 문서들은 악플 수준의 악담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가 된 것은 엄청난 비율을 차지하는 '''강정문서'''이었다. 강정문서란, 성의 없는 한 두 줄짜리 설명이 전부인 상태를 문서를 일컫는 말로, 문서가 속 빈 강정과 같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니까 강정문서는 현재의 토막글과 같은 말이다. 이 강정문서 문제 때문에, 스레디키는 문서 수는 많아도 정작 볼 만한 문서는 드문 상태였다.
  
 
[[파일:강정문서.png|섬네일|center|500픽셀|스레디키는 지나친 강정문서(토막글)로 비판받았다.]]
 
[[파일:강정문서.png|섬네일|center|500픽셀|스레디키는 지나친 강정문서(토막글)로 비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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