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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 달레]]가 집필한 『한국천주교회사』(1874)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참수를 먼저 한 후("머리가 몸뚱이에서 떨어진 뒤에 사지를 자른다") 시신을 거열 한 것으로 보인다. 거열 후 잘린 머리는 3일간 효시(효수) 되었고, 잘린 [[팔]], [[다리]]도 8도에 돌려졌다. 1894년 12월 27일, 사형 집행 방식이 민간인은 [[교수형]], 군사범죄는 [[총살형]]으로 통일되면서 참형<ref>참형은 이후 1900년에 부활했다가 1905년 형법대전에서 다시 금지되었다.</ref>과 함께 폐지되었다.
 
[[샤를르 달레]]가 집필한 『한국천주교회사』(1874)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참수를 먼저 한 후("머리가 몸뚱이에서 떨어진 뒤에 사지를 자른다") 시신을 거열 한 것으로 보인다. 거열 후 잘린 머리는 3일간 효시(효수) 되었고, 잘린 [[팔]], [[다리]]도 8도에 돌려졌다. 1894년 12월 27일, 사형 집행 방식이 민간인은 [[교수형]], 군사범죄는 [[총살형]]으로 통일되면서 참형<ref>참형은 이후 1900년에 부활했다가 1905년 형법대전에서 다시 금지되었다.</ref>과 함께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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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4일 (토) 23:17 기준 최신판

능지형 또는 능지처참, 능지처사는 신체를 여러 부위로 잘라 죽게 하는 형벌이다. 영어로는 death by a thousand cuts 등으로 번역된다. 권력자에 의해 일시적이고 임의적으로 시행되는 형벌이 아니라 법전에 규정되어 있는 형벌이었으며, 적용되는 범죄도 정해져 있었다.

중국에서 10세기 경에 나타나 1905년 폐지되었는데, 폐지될 때까지 그 잔혹성에 때문에 폐지 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서양에서 능지형은 동양의 야만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남아 있었다.

능지형은 신체를 심하게 손상시킨다는 점에서 교형이나 참형 같은 다른 사형 방식보다 무거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한국에서는 능지형을 거열형으로 실시하였다. 1395년에 간행된 대명률직해에서는 능지처사를 모두 거열처사로 번역했고, 태종 7년(1407년) 능지형에 대해서 황희가 "이전에는 거열로 능지를 대신하였습니다"라고 보고한 기록이 있다.[1]

샤를르 달레가 집필한 『한국천주교회사』(1874)에 따르면 조선에서는 참수를 먼저 한 후("머리가 몸뚱이에서 떨어진 뒤에 사지를 자른다") 시신을 거열 한 것으로 보인다. 거열 후 잘린 머리는 3일간 효시(효수) 되었고, 잘린 , 다리도 8도에 돌려졌다. 1894년 12월 27일, 사형 집행 방식이 민간인은 교수형, 군사범죄는 총살형으로 통일되면서 참형[2]과 함께 폐지되었다.

주석[편집]

  1. ^ 태종 7년 11월 28일, 남편을 살해한 충청도 연산현의 내은가이를 저자에서 거열하다
  2. ^ 참형은 이후 1900년에 부활했다가 1905년 형법대전에서 다시 금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