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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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 법주사202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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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설명 = 법주사 팔상전
 
|그림 설명 = 법주사 팔상전
|건립 연대 = [[5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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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연대 = [[647년]]
 
|창건자 = 의신 조사
 
|창건자 = 의신 조사
 
|종파 = [[조계종]]
 
|종파 =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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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재건하는데 필요한 화폐(당백전)를 주조하기 위해 법주사의 청동미륵불과 철당간을 강제로 가져갔다. 문화재를 용광로에 넣고 녹여서 얻은 쇳물로 동전과 못 따위를 만드는 기상천외한 일을 국가 차원에서 저지른 것이다. 이때 없어진 청동미륵불과 철당간은 현대에 와서 재건되었으나, 문화재적 가치는 소실되었다.
 
1872년,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재건하는데 필요한 화폐(당백전)를 주조하기 위해 법주사의 청동미륵불과 철당간을 강제로 가져갔다. 문화재를 용광로에 넣고 녹여서 얻은 쇳물로 동전과 못 따위를 만드는 기상천외한 일을 국가 차원에서 저지른 것이다. 이때 없어진 청동미륵불과 철당간은 현대에 와서 재건되었으나, 문화재적 가치는 소실되었다.
  
== 문화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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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징 ==
[[파일:법주사쌍사자석등.jpg|300픽셀|섬네일|법주사 쌍사자석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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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쌍자사석등.jpg|300픽셀|섬네일|법주사 쌍사자석등]]
  
2018년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법주사를 포함한 국내 7개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법주사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많은 절이다. 법주사에는 무려 3점의 [[국보]](쌍사자석등, 팔상전, 석련지)와 12점의 [[보물]], 22점의 지방유형 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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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법주사를 포함한 국내 7개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법주사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재가 많은 절이다. 법주사에는 무려 3점의 [[국보]](쌍사자석등, 팔상전, 석연지)와 12점의 [[보물]], 22점의 지방유형 문화재가 있다.  
  
 
대한민국 국보 제55호로 지정된 '''법주사 팔상전'''은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목조탑이자 가장 높은 탑으로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24년 재건한 것이다. 정사각형의 하단을 갖는 5층 목탑으로서, 모든 층이 통째로 뚫려 있는 형태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55호로 지정된 '''법주사 팔상전'''은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목조탑이자 가장 높은 탑으로서,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24년 재건한 것이다. 정사각형의 하단을 갖는 5층 목탑으로서, 모든 층이 통째로 뚫려 있는 형태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5호로 지정된 '''법주사 쌍사자석등'''은 사자 두 마리가 등을 들고 서 있는 모양의 석등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근육 표현이나 갈기 등 세밀한 조각이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사자 두 마리가 대칭 구조를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한 마리는 입을 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닫고 있다. 이러한 작은 섬세함들이 조각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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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 5호로 지정된 '''법주사 쌍사자석등'''은 사자 두 마리가 등을 들고 서 있는 모양의 석등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근육 표현이나 갈기 등 세밀한 조각이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사자 두 마리가 대칭 구조를 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한 마리는 입을 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입을 닫고 있다. 이러한 작은 섬세함들이 조각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원래 밋밋한 팔각기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자 두 마리를 조각해서 넣은 것은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이후 시대에도 이를 모방한 쌍사자석등이 여럿 만들어졌다.  
 
원래 밋밋한 팔각기둥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자 두 마리를 조각해서 넣은 것은 당대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이후 시대에도 이를 모방한 쌍사자석등이 여럿 만들어졌다.  
  
{{꼭 가봐야 할 사찰}}
 
  
 
[[분류:절]]
 
[[분류:절]]
 
[[분류:보은군]]
 
[[분류:보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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