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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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역사학자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죽으면서 오히려 한국의 식민지화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주장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을 자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문제를 두고 강경파와 온건파 세력이 충돌하고 있었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데에는 신중한 온건파였기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급작스럽게 식민지로 만들 경우, 한국인들이 크게 반발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시간을 두고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이미지를 좋게 만든 뒤에 식민지로 삼아야 안정적인 식민지 운영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면서, 강경파가 세력을 잡아 빠른 한국 강제 병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뒤 겨우 10달 만에 한국은 [[일제강점기|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죽으면서 오히려 한국의 식민지화 시기가 앞당겨졌다고 주장한다. 당시 일본에서는 한국을 자국의 [[식민지]]로 만드는 문제를 두고 강경파와 온건파 세력이 충돌하고 있었는데,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데에는 신중한 온건파였기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급작스럽게 식민지로 만들 경우, 한국인들이 크게 반발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시간을 두고 한국인들에게 일본의 이미지를 좋게 만든 뒤에 식민지로 삼아야 안정적인 식민지 운영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면서, 강경파가 세력을 잡아 빠른 한국 강제 병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토 히로부미가 죽은 뒤 겨우 10달 만에 한국은 [[일제강점기|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 ||
− |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서, 공식적인 외교 절차를 밟으며, 한국인들의 환심을 사면서 한국을 더 확실하게 식민지로 만들려는 속셈에 가까웠다. 따라서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않았다면, 식민지가 되는 시간은 조금 늦춰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일본제국에 대한 반발심, 즉 독립 의지 자체가 꺾여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제국이 패망한 뒤에도 한국은 독립하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 + | 그러나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서, 공식적인 외교 절차를 밟으며, 한국인들의 환심을 사면서 한국을 더 확실하게 식민지로 만들려는 속셈에 가까웠다. 따라서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지 않았다면, 식민지가 되는 시간은 조금 늦춰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일본제국에 대한 반발심, 즉 독립 의지 자체가 꺾여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제국이 패망한 뒤에도 한국은 독립하지 못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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