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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6일 (일) 22:46 판
을지문덕은 고구려의 영왕양 때 유명한 장수이다.
개요
612년에 수나라의 제2대 황제인 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하였을 때 위헙을 무릎쓰고 군대를 무찔렸으며, 「제2차 고구려 침입」 때는 수나라 군대를 완전히 전멸시켰다. 이 때 「살수」 (오늘날의 청천강)에서 돌아간 병사의 수가 겨우 약 30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제2차 고구려 침입」 때 당시 수나라의 장군인 우문술에게 보낸 한시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책 중 하나인 「삼국사기」에 고려시대의 유학자인 김부식이 기록하여 놓았는데, 그 시가 고구려의 문학작품중에서 유일하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