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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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민공화국 (朝鮮人民共和國)은 8·15 해방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전신으로 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정부임을 표방하며 국내에 조직되었던 정치 단체이다.

역사

배경

해방 직후, 일제강점기 내내 억눌러져 있던 정치 활동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기존의 독립운동 단체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정치 단체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먼저 국내에 조직화된 단체가 여운형조선건국동맹을 모체로 한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이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아래의 5개항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조선총독부로부터 행정권과 치안권을 위촉받아 해방 이틀 뒤인 8월 17일에 결성되었다.

1. 전국적으로 정치범과 경제범을 즉시 석방할 것
2. 3개월간의 식량을 확보해 줄 것
3. 치안유지와 건국운동을 위한 모든 정치운동에 대하여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
4. 학생과 청년을 훈련·조직하는 일에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
5. 노동자와 농민을 건국사업에 동원·조직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 것

이어서, 8월 26일에는 건국 사업의 방향을 천명한 강령을 발표하였다.

첫째, 우리는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한다.
둘째, 우리는 전 민족의 정치적·사회적 기본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정권의 수립을 기한다.
셋째,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내 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여 대중생활의 확보를 기한다.

이에 따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건국 사업을 진행해 나가며 일반 대중들의 지지를 끌어 모았으며, 활동 범위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 거의 준정부적인 조직으로 개편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조금씩 우익 세력의 이탈이 일어나면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는 초기의 초이념적인 좌우연합의 성격에서 좌익적인 성격이 짙은 단체로 경도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 후기의 좌경화는 내부의 좌익 인사와 잔류 우익 인사 간의 대립과 미국소련을 위시한 연합군의 진주가 다가오면서 점차 가속화되었다.

건국 선포

미군의 진주에 대해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내에서 이를 하나의 정부로서 대응하기 위한 국가를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주장에 따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9월 6일 경기여자고등학교에서 여운형을 임시의장으로 하는 전국인민대표자대회를 개최하여 그 성립을 천명하였다. 전국인민대표자대회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아래와 같은 정강을 발표하였다.

1. 일본제국주의와 봉건적 잔재세력을 일소하여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기한다.
2. 일본제국주의의 법률·제도를 즉각 철폐한다.
3. 일본제국주의자와 민족반역자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에게 무상분배한다.
4. 일본제국주의자와 민족반역자들의 공장·광산·철도·항만·선박·통신 그밖의 모든 시설을 몰수하여 국유화한다.
5. 언론·출판·집회·결사 및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6. 8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고, 만 14세 이하의 유년노동을 금지하며, 만 18세 미만 청소년의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제한한다.
7. 국제평화 유지를 위한 우방국가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중요시한다.

활동

해체

조직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