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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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희(趙承熙, 1984年1月18日-2007年4月16日)는 대한민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였다. 그는 버지니아 공과 대학교에서 총기 난사를 벌여 32명을 사살하고 29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로 인한 사망자는 미국의 역대 학교 내 살인 사건두 번째로 많은 사망자다. 1등은 1927년에 일어난 배스 학교 폭발 사건으로 지역 교육위원회 위원이던 Andrew Kehoe가 폭탄 테러로 죽인 것이다. 그러나 조승희는 권총을 사용한 반면에 Kehoe는 폭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고로 조승희는 미국 역대 학교 내 총기 난사 중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하였다. 그의 사인은 권총 자살이다.

생애

1984년 1월 18일충청남도 아산군[1]에서 태어났다.[2]

이후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1992년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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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미국에서는 많은 인종 차별과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 살았다.

본래 중학교 시절에는 똑똑하고 농구 잘하는 우등생이었지만 말이 없는 성격과 동양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전혀 소리 내어 읽으려 하지 않다가 교사가 F학점을 주겠다는 위협에 가까스로 했는데 그 발음 때문에 같은 반 학생들은 모두 큰 폭소를 터뜨리며 비웃었고 심지어는 "중국으로 돌아가라" 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옷을 찢기거나 또는 맞는 등 전형적인 집단 괴롭힘을 심하게 당했으며 이런 것은 그에게 미국이라는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키운 것 같다. 조승희를 기억하는 고등학교 동문들은 "정말로 사람들이 그에게 너무 잔인했고 그는 심하게 괴롭힘을 당한 게 맞다"라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인정하건대, 우리는 그를 너무 못되게 대했습니다. 어떤 경우 잔인하고 비열하기까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그에게 공개적으로 대답을 강요하면,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낮고 작아서 마치 동굴 속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지요. 우리는 그에게 물건을 집어던졌고 그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1달러 지폐를 내밀면서 그에게 무슨 말이든 하면 주겠다고 놀렸지요. 이제 되돌아보니 그 당시의 내 행동이 창피하기 그지 없습니다”

익명의 고등학교 동기

“나는 조승희가 입을 열지 않거나, 갑자기 화를 내며 분노하거나 하기는 했지만, 아주 똑똑했다고 기억합니다. 나는 과학 과목에서 그와 함께 팀을 이루었고 그 덕택에 우리는 1등 상을 탔습니다”

조승희의 고등학교 동창인 에드 노버

아메리칸 아이돌에 자신이 춤추고 노래부른 것이 담긴 동영상을 보내 참가신청은 했다


  1. ^ 아산시
  2. ^ 총기난사 조승희씨 본적 '아산시'
  3. ^ 조승희에 대한 찬양이 주를 이루는 야갤발 동영상이지만 참고용으로 올립니다.